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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선 나이 과거 이모 한백희 결혼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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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선

김완선은 1969년 5월 16일생으로 올해 나이 54세 입니다. 고향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출생이며 키 164cm, 몸무게 45kg, 혈액형 B형, MBTI ESTP 입니다. 가족은 부모님 아버지 김성남, 어머니 한수자가 있으며 5녀 중 셋째라고 합니다. 학력은 서울잠원초등학교, 세화여자중학교, 세화여자고등학교 (중퇴), 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 하와이 대학교 디지털아트학 학사입니다. 소속사는 KW선플라워 입니다.

과거 집안 가족

김완선의 원래 이름은 김이선이었으나 이후 예명이었던 김완선으로 개명하였다고 합니다.

김완선 집안은 유명한 민속춤의 전통 명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김완선의 외할아버지는 한성준 명인으로 한국 민속품의 아버지라 불리며 조선성악회의 창립에 관여했고, 일제때 명맥이 끊기다시피한 전통춤을 집대성한 인물입니다. 또한 김완선 이모 한영숙 명인 역시 한국 민속춤에서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고 있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승무를 춘 명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에 김완선의 친가 역시 예술가 집안으로 친할아버지가 탱화 화가셨다고 하는데요. 할아버지 제자가 바로 만복 스님이라고 하며 김완선의 아버지 역시 어렸을 때 탱화를 그렸는데, 중간에 한자를 배우기 싫어 그만두셨고, 나중에 토목 설계를 하셨다고 합니다.

김완선은 어렸을 때 외가에서 잠깐 살았다고 하는데요. 그때 이모들이 재미삼아 동네 노래자랑 대회에 데리고 가게 되었고, 김완선은 대회에 참가해 동네에서 1등을 하고 옆 동네까지 원정까지 갔다고 합니다.

원래 김완선의 성격은 많이 외향적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외가댁에 맡겨졌었던 김완선은 이후 어머니가 다시 데리러왔지만 울면서 가지 안겠다고 했고, 어머니는 섭섭함에 김완선을 데리고 방안에 들어가 문을 잠근 채 있다가 나왔다고 합니다. 방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김완선은 그때 이후로 성격이 내성적으로 확 바뀌었다고 합니다.

5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난 김완선은 어린시절 언니들 틈에 끼어 이모인 한백희로부터 훈련을 받게 되면서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였다고 하는데요. 김완선 이모 한백희는 미8군 가수 출신의 한국 최초의 여성 매니저이자 가수 인순이를 발굴했던 스타 메이커였는데 처음에는 내성적이었던 김완선을 보고 시큰둥했지만 춤을 배우며 언니, 동생보다 뛰어난 실력을 뽐내는 김완선을 보고 상황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이모 한백희

김완선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대를 앞서간 한백희의 스타 육성법에 의하여 스타로 양육되었는데요. 당시 이모의 집이 있는 도봉구 방학동의 4층 건물에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무려 7년이나 감금이 되어 죽어라 연습만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철저한 이모의 계산대로 성장하게 된 김완선은 데뷔 전, 가수 인순이 매니저였던 이모 한백희를 통해 1983년 인순이의 백댄서 팀인 '인순이와 리듬터치'의 백댄서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참고로, 김완선은 중학교 졸업 후 세화여자 고등학교에 입합했지만 이후 방송 출연과 가수 활동 등 바쁜 스케줄로 인해 중퇴하였고,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김완선의 최종 학력은 하와이 대학교 디지털 아트학입니다.

그렇게 김완선은 이모를 의지하며 가수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3집 활동이 시작 될 당시 스무살이 되면서 자아가 생기기 시작했고, 이모와 점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모 한백희는 김완선을 억누르기 시작했고, 김완선은 곡 선정부터 무대의상, 메이크업, 인터뷰 대화까지 전부 시키는 대로 했어야 했는데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점점 위축되고 작아져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김완선은 가수 활동을 하면서 매일 혼이 났고, 늘 자신감이 없어서 무대에서 노래를 다 부르고 나면, 이모에게 혼날까봐 내려오기 싫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말도 안되는 꼬투리로 혼냈던 것이 화를 돋우면, 다른 날보다 월등히 폭발하는 무대를 꾸미는 김완선의 모습을 보고 이모가 그런 것을 노린 전략 같았다고 하네요.

김완선은 이모 한백희 덕분에 매번 한계를 뛰어넘어 정신력이 강해졌고, 대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늘 모자라고 못난 아이라는 생각에 주눅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칭찬 받는 것이 행복한 일인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또한 김완선은 이모와 음악적 갈등 관계 외에 수입 정산 문제로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데요. 김완선의 전성기 때 한 달 수입이 아파트 2~3채를 살 정도였으나 이모와 계약서도 쓰지 않고 활동하면서 13년 동안 단 한번도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이모 한백희는 남편을 잘못 만났고, 그로 인하여 큰 빚을 지게 되었는데 이 빚의 상당 부분을 김완선이 번 돈으로 변제를 하게 되었는데요. 김완선은 이모가 원래 검소한 사람이라며 차라리 그 돈을 본인에게 썼더라면 덜 억울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완선은 이런 갈등으로 1998년 이모와 결별을 하게 되지만 완전히 인연을 끊지는 못하였는데요. 이모 한백희가 2006년 신장병과 당뇨 합병증으로 응급실에 갈 돈이 없어서 김완선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 요청을 김완선은 뿌리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한백희는 2006년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고, 김완선은 이모 한백희와 끝까지 화해하지 못하고 용서를 하지도 못한채 끝이 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김완선은 이후 이모와 있었던 사실들을 세상에 알린 것에 대해 후회한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말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데뷔 활동

김완선은 1986년 1집 앨범 '독집 제1집'으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김완선은 데뷔 곡 '오늘밤'으로 데뷔와 동시에 단숨에 스타덤에 오르며 인기 가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김완선은 고등학생 신분인 17살의 어린 나이로 데뷔해 한국 여성 댄스가수의 시초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1집 '오늘밤'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데 이어 1987년 2집 ‘나 홀로 뜰 앞에서’와 '리듬 속의 그 춤을‘, 1988년에는 이장희가 프로듀싱한 2집 음반 ’나 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까지 히트시키며 인기를 이어갔습니다. 김완선은 1986년 KBS 가요대상 신인상을 시작으로 1987년부터 1991년까지 5회 연속 올해의 가수상을 수상하였고, '한국의 마돈나', '댄싱퀸' 등의 수식어를 얻기도 했습니다.

이후 1990년에 발매한 정규 5집 앨범 ‘나만의 것’,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가장무도회’까지 연달아 히트하면서 김완선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에 걸쳐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김완선은 이모와 함께 활동하고 있던 1992년 6집 '애수'를 끝으로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며 충격을 주었는데요. 이후 1994년 대만에서 활동을 시작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한류열풍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김완선은 1992년 은퇴 선언에 대해 당시 이모 한백희가 기획했던 연출이라고 밝혀 놀라움을 주었는데요. 이모 한백희의 꿈은 김완선을 아시아의 스타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홍콩 진출을 염두에 두고 쇼킹한 이슈를 만들기 위해 신문사 기자와 상의를 거쳐 은퇴 발표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완선은 은퇴 발표 당시 눈물을 보였는데 슬퍼서가 아니라 거짓말을 해 너무 창피하고 괴로워서 운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김완선은 한국으로 컴백한 뒤, 1996년 7집 '이노센스'를 발표하였고, '오룡비무방'이라는 댄스 그룹을 제작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후 김완선은 이모 한백희의 별세로 큰 충격을 받고, 결국 3년 동안 하와이로 떠나 뒤늦은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하와이 생활을 마친 김완선은 2011년 초에 컴백해 꾸준히 앨범 활동을 이어갔으며 뒤늦은 전공을 살려 울산국제아트페어에서 자신의 작품들을 전시한 '김완선 특별전 Here I Am'을 열며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로서 극찬을 받았습니다.

결혼 남자친구

김완선은 아직 결혼 안 한 미혼이며 현재 남자친구 유무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완선은 과거 착하고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자신을 정말 많이 좋아해줬지만 당시 자신의 정신연령은 겨우 15살이었기에 결혼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 프러포즈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김완선은 과거 결혼에 대해 "살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다. 결혼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결혼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어릴 때는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살아보니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했다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불행하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이어 "오히려 내가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다. 연애나 이런 것은 나와는 맞지 않으니까생각도 하지 말자 싶었다. 그렇게 사니까 편하다. 내가 일도 많이 하는 편이고, 연애하면 쉬는 날 쉬지도 못하고 꾸미고 나가야 하지 않나,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김완선은 현재 솔로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하며 김완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보다 본인의 자유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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