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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 나이 아내 부인 자녀 아들 딸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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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

송창식은 1947년 2월 2일 생으로 올해 나이 74세 입니다. 고향은 인천광역시 출생이며 키 175cm의 큰 키로 당시 화제가 되며 현재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자 가수, 작곡가로 다양한 능력을 가진 아티스트입니다. 학력은 인천신흥초등학교와 인천중학교를 졸업 후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수석입학 하였으나 가정형편상 중퇴하였습니다. 가족관계는 아내 한성숙과 2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첫째 아들 송결은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딸 송빛터와 송무늬는 입양을 하였다고 합니다.

송창식은 1967년 윤형주와 함께 트윈폴리오를 결성하여 1968년 트윈폴리오 1집 앨범과 함께 '하얀 손수건'이라는 곡으로 가요계에 데뷔하였습니다. 1969년에는 영화 '푸른 사과'의 조연으로 영화 배우로 데뷔하기도 했으며 1970년에는 솔로로 전향하여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1974년에는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곡으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며 1975년 ‘한 번쯤’, '왜 불러'라는 곡으로 대박을 치며 한동안 가요계를 장악했습니다. 1980년에는 '가나다라'로 가요에 국악을 접목하는 시도를 하였으며 1986년에는 ‘참새의 하루’와 ‘담배가게 아가씨’를 더블 타이틀로 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송창식은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남달라서 8살때 이미 곡을 쓸 줄 알게 되었고 주변에서 `모차르트`로 불리기도 했다는데요. 중3 때는 경기음악콩쿠르 성악 부문 1등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이후 서울예술고등학교 성악과에 수석 입학 하였지만 가난으로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송창식의 아버지는 경찰관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아버지가 전사하셨고, 어머니도 행방불명 되어 조부모 밑에서 불우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송창식은 군경 유자녀 장학금과 심부름 아르바이트로 학업을 겨우 이어가긴 했으나 가난으로 실기시험을 치르지 못해 결국 유급 통지서를 받아 1년을 다닌 후 중퇴하였다고 합니다.

송창식 쎄시봉

송창식은 70년대 초중반 쎄시봉 카페에서 활동 하였으며 2년 동안 서울역 바깥에서 잠을 자거나 건설 노동자들이 자는 곳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노숙자와 같이 생활하며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다가 쎄시봉 카페에서 공연을 해주면 매일 밥을 제공해 주겠다 말에 노래하는 친구들을 모아 쎄시봉이라는 그룹을 결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송창식을 데려간 사람은 이상벽이었으며 송창식은 이후로 생활과 노래의 전환점을 맞으며 윤형주, 이장희, 김세환, 김민기, 양희은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송창식 결혼 아내 자녀

송창식은 1977년 아내 한성숙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송창식 아내 한성숙은 우석대학교에 진학하여 간호학을 전공했으며 대학 시절 메이퀸을 하기도 했고, 미국 정보부 스튜어디스 출신으로 영국 왕실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다고 합니다.

이후 송창식은 2019년 ‘인생 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여 아내와 20년째 떨어져 지낸다고 밝혔는데요.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사업 때문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2남 1녀의 자녀가 있으며 그 중 두 명의 자녀를 입양하였는데요. 아내 한성숙의 쌍둥이 언니가 아기를 갖고 싶었으나 난임이였기에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을 추진했다가 관련 법규가 바뀌면서 무산되어 송창식 부부가 입양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둘째 아들 역시 언니가 미국에서 인공수정해 아이를 낳았지만 미국에서는 엄마가 아이를 못 기르면 빼앗긴다고 해서 둘째 아들 역시 입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송창식의 큰 아들 송결은 현재 엔씨소프트 게임 기획자로 알려져 있으며 2006년에 부인과 결혼 후 슬하에 딸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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