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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박항서 감독 나이 고향 연봉 아내(부인) 최상아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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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박항서는 1959년 1월 4일생으로 올해 나이 66세입니다. 고향은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출생이며 키 170cm, 몸무게 62kg입니다. 학력은 생초초등학교, 생초중학교, 경신고등학교, 한양대학교 학사이며 가족은 아내(부인) 최상아와 아들 박찬성이 있습니다. 종교는 개신교이며 소속사는 디제이매니지먼트, 소속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입니다.

과거 집안 가족

박항서의 아버지는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경찰 간부로 재직하다 부상으로 국가유공자로 선정되었고, 어머니는 명문 진주여고를 나왔다고 합니다. 박항서의 부모님은 과거 고향에서 약방을 운영하였고, 박항서는 크게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랐다고 하는데요.

이후 축구를 굉장히 늦게 시작하게 되었는데 중학생때까지만 해도 장래희망이 군인이었고, 축구는 논두렁에서 공차는 게 전부인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박항서는 부모님의 높은 교육열에 서울로 상경했으나 처음 목표했던 배재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하고 경신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진학에 실패해 좌절하고 있을 때 교실에서 경신고 축구부원들이 공차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차범근이 경신고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운명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후 박항서는 공부보다 축구에 대한 열망이 강해졌지만 키 166cm에 비쩍 마른 체격과 축구부 경력 조차 없는 모범생을 받아줄 축구부는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러다 당시 경신고 축구부 감독과 절친한 사이였던 누나의 남편의 빽으로 겨우 축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력이 없던 박항서는 6개월간 후보선수로 지내야 했고, 운동선수 학사관리가 미흡했던 그 시절 관행에 따라 제때 졸업을 못하고 1년을 유급했는데요. 하지만 종일 축구공을 가지고 훈련하며 빠르게 실력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박항서는 이후 1976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청룡기 축구대회에서 결승골을 넣어 경신고에 우승컵을 안겼으며 한양대 2학년이었던 1977년에는 제 19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하는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었습니다. 이어 1978년에는 아시아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 청소년 대표팀 주장을 맡아 우승했습니다.

이후 박항서는 1979년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B팀인 충무에 선발되었으며 1981년에는 1진인 화랑팀에 선발되었습니다. 이후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1981년 실업 축구단이었던 제일은행 축구단에서 자신의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고, 곧바로 육군 축구단에서 국복무를 한 뒤, 1984년 럭키금성 황소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며 프로 무대 데뷔를 하였습니다.

한편, 박항서 감독의 어머니 백순정 여사가 100세를 맞이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는데요. 이에 베트남 주석이 박항서 어머니의 100번째 생일을 위한 선물을 전했다고 합니다.

박항서 감독은 한국 귀국 전, 베트남 주석궁에 초대되었다고 하며 이에 대해 박항서는 "어떻게 아시고 어머니 생신 선물로 액자 표구를 주셨다"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활동 경력

박항서는 1984년 '럭키 금성'에 입단하며 데뷔를 하였습니다. 박항서는 1985년 K리그 우승을 이끌며 리그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86년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했으며 1988 시즌이 끝난 뒤 은퇴하였습니다.

박항서는 은퇴 후 1994년 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활약했고, 1996년까지 LG 치타스의 트레이너로 선임되어 트레이너와 코치로 활동했으며 1996년 11월 5일 조영증 감독이 사퇴하자 감독 대행이 되어 1996년 FA컵에서 한 경기를 지휘하였습니다. 이후 1997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옮겨 2000년 2월까지 활동했습니다. 허정무 감독 사퇴 이후 후임 대표팀 감독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내정된 박항서는 2000년 12월 한일 정기전에서 감독 대행 자격으로 경기를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박항서는 이후 히딩크호의 수석코치로 합류하였고, 2002 FIFA 월드컵 대표팀 수석코치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습니다. 이후 월드컵 4위의 성과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박항서는 월드컵 이후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팀을 맡으며 생애 처음으로 감독직을 맡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에서 하늘을 찌르던 대표팀의 사기를 등에 업고도 겨우 동메달을 땄다는 이유로 해임되었습니다. 이후 박항서 감독은 공황장애 진단을 받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박항서 감독은 이후 포항 스틸러스에서 코치를 거쳐 전남 드래곤즈에서는 기술고문을 맡았다가 2005년 고향 팀인 경남 FC의 창단 감독으로 취임하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이후 4위라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구단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인해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2007년 12월 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된 허정무의 대체자로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박항서는 2010년 11월 전남 드래곤즈 감독에서 사임하였고, 이후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다가 2012년 상주 상무의 감독으로 취임하였습니다. 이후 팀을 정비해 1부 리그 승격을 성공시킨 후 상무와의 계약 기간이 끝남으로 상주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박항서는 고향인 산청군으로 돌아가 짧게 고등학생 유소년들을 코칭하다가 내셔널리그 창원시청 축구단의 제 2대 감독으로 취임하였고, 6월 개최한 내셔널선수권 우승을 차지하는 등 선전하였습니다.

하지만 후반기가 접어들수록 여름 이적 시장에서 보강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한계를 드러냈고, 순위가 8팀 중 7위로까지 급하락하며 아쉬움을 남겼는데요. 지도자 세대교체가 워낙 빠르게 진행 중이라서 환갑이 다 되어가던 박항서 감독 스스로는 '이렇게 프로팀 커리어는 끝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동남아는 어떻겠냐며 직접 에이전트와 연결해주며 적극적으로 권유했다고 하는데요. 그러자 며칠 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제의가 왔고, 너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외국인 감독들의 무덤 자리라는 소문을 듣고는 잘못 선택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의 이 선택은 자신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는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2017년 10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과 베트남 U-23 축구 국가대표팀의 겸임 감독으로 공식 취임하였고, 이후 2018년 AFC U-23 챔피언십에서 약체로 평가받던 베트남 U-23 대표팀을 결승에 진출시켰는데요. 비록 우즈베키스탄에게 지면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 대회를 통해 베트남 국민들로부터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어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베트남을 56년만에 아시안 게임 축구 4강에 올려놓으며 매 대회마다 팀의 역대 최고 성적을 경신하며 베트남 축구 영웅으로 떠올랐고, 2018년 AFF 스즈키컵에서 2008년 대회 이후 무려 10년만에 베트남을 우승으로 이끌며 2018년을 최고의 한해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2019년 AFC 아시안컵에서 베트남을 12년만에 아시안컵 8강으로 이끌었으며 2019년 킹스컵에서도 준우승을 이끌어내면서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축구 최강국으로 만들었는데요. 박항서는 2019년 11월, 3년 재계약을 맺으며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계속 이어갔고, 올해의 감독상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박항서는 2019년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도 역시 베트남에게 1959년 대회 이후 60년 만에 통산 2번째 금메달을 선사하며 베트남 남자 축구에서 역사에 남을 업적을 세웠는데요. 그렇게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를 60년 만에 동남아시아 최강자로 만들어 '박항서 매직'이라 불렸고, 베트남 정부는 2020년 8월 박항서 감독에게 2급 노동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박항서는 2021년 11월 베트남축구연맹과 1년 계약 연장에 합의했다고 밝혔으며 계약은 2023년 1월 31일에 만료되었는데요. 박항서는 베트남 U-23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마지막 대회였던 2021년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도 베트남의 2회 연속 금메달이자 이 대회 전승 무실점 금메달을 이끄는 성과를 거두며 U-23 대표팀 감독 생활을 멋있게 마무리지었습니다.

연봉

박항서의 연봉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 역사상 역대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는 정도로만 알려졌습니다. 박항서 감독의 연봉이 공개될 경우 한국과 베트남에서 상반된 반응이 나올 것을 우려해 비공개하였다고 하는데요. 베트남 국영방송 VTCDP 따르면, 베트남 국영 항공사인 베트남 항공이 박항서 감독에게 한국-베트남 노선 평생 이용권을 선물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재계약을 하면서 매달 세후 6만 달러를 받기로 했으며 여기에 개인 주택과 자동차, 항공비 등을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박항성 감독이 받는 급여는 최대 월 8만 달러라고 알려졌는데요.

베트남 현지 언론에서는 박항서 연봉에 대해 약 96달러로 추산했으며 이와 관련해 베트남 몇몇 주요 매체는 비밀이었던 월급 추정치까지 공개하며 "한국에서 이 월급으로 박 감독을 데려갈 곳이 많다"고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결혼 아내(부인) 최상아 자녀 아들

박항서 감독은 1987년 5월  지금의 아내(부인) 최상아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박항서 아내 최상아의 나이, 직업 등에 대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내 최상아는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협회로부터 제의를 받고 고민할 때 적극적으로 권유해 베트남으로 갈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당시 아내 최상아는 이제 60세가 되는 남편의 열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베트남 감독직을 권했다고 합니다. 박항서와 아내 최상아 사이에 자녀로는 아들 박찬성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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