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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심신 나이 아내 부인 이은혜 딸 자녀 결혼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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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

심신은 1967년 7월 29일생으로 올해 나이 56세입니다. 고향은 충청남도 대전시 부사동 출생이며 키 186cm, 몸무게 73kg, 혈액형 B형이라고 합니다. 학력 사항은 대전상업고등학교 상업과, 우송공업대학 공업디자인과 (중퇴)이며 가족은 부모님 아버지 심정보, 어머니 홍성희와 큰동생 심민, 작은동생 심진 그리고 아내(부인) 이은혜와 딸 심혜원, 아들 심동현이 있습니다. 종교는 개신교이며 현재 소속사는 마로니에 엔터테인먼트 소속입니다.

과거

 심신은 어린시절 어린이 합창단에 들어가 활동했다고 하며 이후 초등학교 4학년 때 학생 밴드부에 가입하여 베릴라라는 악기를 처음 연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성악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이탈리아의 테너 마리오 린자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감명을 받아 오페라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심신은 성악을 전공하기 위해 서울예술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삼았지만 집안의 반대로 대전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심신은 학교 축제때 그룹사운드 선배의 공연을 보게 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록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는데요. 버닝 스톤즈라는 스쿨 밴드에 들어가 베이스 연주를 하면서 처음으로 기타를 잡게 되었고, 이후 심신은 차근차근 실제 무대 경험을 쌓아 올렸으며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1986년 6인조 록 밴드인 외인부대의 보컬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대전, 논산, 청주 등의 클럽 무대에서 음악적 역량을 키우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요.

하지만 집안에서 음악에 대한 반대가 심해 잦은 갈등을 겪게 되었고, 이때 심신은 가출을 하고 아버지에게 붙잡혀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으며 상경 이후에 '위대한 탄생'의 김택환이 이끄는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 달도 되지 않아 팀이 분산되면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이후 세종 호텔 나이트에서 노래를 하다가 이를 본 박수창에 의해 '바람과 구름'의 리드 보컬로 발탁되어 명동을 중심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고, 코오롱 자스민의 모델로 발탁되면서 심신은 본격적으로 패션모델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델계의 떠오르는 샛별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심신은 1980년대 후반 인기 CF스타로 활약하였고, 이후 가수로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데뷔 활동

심신은 1990년 10월 팝 발라드곡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심신은 데뷔 후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후 후속곡인 '오직 하나뿐인 그대'까지 사랑을 받으며 두 곡의 메가 히트곡으로 12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상당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당시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까지 더해 데뷔와 동시 전성기를 누렸으며 10대의 우상으로 급부상하였고, 심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권총춤에 사람들이 열광하며 그의 패션, 춤, 퍼포먼스, 노래 등 모든 것이 유행이 될 정도로 붐을 일으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심신의 노래 '오직 하나뿐인 그대'는 당시 다운 차트에서 11주 연속 1위를 차지하였고, 가요프로그램 9주 연속 1위라는 신기록을 달성하며 KBS 가요대상과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는 10대 가수상을 수상은 물론, 그해 한국 갤럽에서 발표한 인기도 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거두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후 후속곡 '욕심쟁이' 역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심신은 정상의 자리를 지켜나갔고, 1992년에는 MBC 베스트극장과 '사랑이 뭐길래'에도 출연하는 등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한창 인기 절정이던 1990년대 초반 심신은 동갑내기 가수 강수지와의 데이트가 사람들에게 노출이 되면서 열애 사실이 언론을 통해 기사회되었고, 계속해서 각종 루머에 시달리게 되었는데요. 당시 심신 못지않게 강수지 역시 모든 매체 섭외 1순위로 탑스타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최고의 남녀스타의 열애는 엄청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열애를 인정하며 그 여파로 소속사는 물론 팬들까지 충격에 빠졌고, 심신의 음반은 70% 이상 반품되는 등 큰 혼란을 야기했는데요. 두 사람은 1992년 3월에는 결혼설까지 번지기도 했지만 심신은 3집 발매를 앞두고 결별 소식을 전했는데요.

두 사람은 모두 바쁜 스케줄로 자주 만날 수 없어 거리감이 생겼고, 서로의 성격차이로 갈등이 많아지면서 결국 사소한 말다툼이 큰 갈등으로 번지게 되어 결별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강수지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 엔딩곡 ‘흩어진 나날들’을 부르며 무대서 눈물을 흘렸고, 이에 심신 앨범은 또 한 번 반품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는데요. 심신은 스캔들 후에 1집에서 2집으로 넘어가면서 30만 장이 다 반품이 들어왔고, 이후 가수 활동이 아닌 다른 일들도 많이 해봤지만 벽에 부딪치고 한계에 달하게 되면서 심신은 미국에 가서 조그마한 일을 하면서 비즈니스를 하려고 라이브 카페도 차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일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요.

이후 심신은 1993년 당시 신예 작곡가였던 주영훈과 미국에서 기획하고 만든 3집 앨범을 공개하였고, 이어 심신과 FF밴드를 결성하여 처음으로 아카펠라를 시도해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녀'를 발표하여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듬해 1994년에는 KBS 드라마 '인간의 땅'에 출연해 연기자로서의 재능을 인정받고 활동 범위를 넓혀갔으며 이후 MBC 노래 만들기에 주연배우로 캐스팅되면서 많은 기대를 모았는데요.

하지만 이후 2집 ‘욕심쟁이’까지 히트시킨 심신은 1995년 2월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되어 충격을 주었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심신은 동종 전과가 없었고, 대마초를 많이 피운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는데요. 그런데 심신은 다음달인 1995년 3월말에 결혼 발표를 하였고, 다시 한 번 팬들에게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심신은 1996년 결혼과 동시에 미국 시애틀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고, 2년 후인 1998년 한국으로 돌아와 또다시 가수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는데요.

하지만 앨범제작사의 사정때문에 빛도 보지 못하고 묻혀지고 말았고, 이후 심신은 2001년  5집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도 실패로 돌아가며 심신은 연달아 좌절을 맛보게 되면서 결국 또다시 대마초 흡입 혐의로 구속되면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두번의 실수로 팬들은 심신에게 엄청난 실망감을 느꼈고, 결국 심신은 아내 이은혜와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생활도 순탄치는 않았으며 아내와 크게 싸운 뒤 2달 동안 떨어져 지내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심신은 이혼 등 루머가 돌기도 했지만 심신은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된 후 다시 가족의 곁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심신은 향수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우울증까지 걸릴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결국 심신은 자신이 노래를 부르지 않고는 못 사는 사람인 것을 깨닫고, 미국 50개주를 홀로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하였고, 2003년에는 KBS 주말드라마 '보디가드' OST '쿨하게'를 발표해 오랜만에 근황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2006년 말에 한국에 돌아온 심신은 2007년 9만여 팬들의 지원으로 컴백해 발라드곡 ‘그림자’를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복귀를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2009년에 발표한 '내 사랑 영순'은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의 OST로 삽입되었으며 2011년에는 '아프다' 발표하였고, 2013년에는 심신의 3집 앨범 수록곡인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녀'가 영화 '미나문방구'에서 두 가지 버전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습니다.

결혼 아내(부인) 이은혜 자녀

심신은 지난 1996년 3월 3일 지금의 아내(부인) 이은혜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심신 아내(부인) 이은혜에 대한 나이 직업 등에 대해서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집안이 1996년 당시 잘나가던 외교관 집안이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심신과 아내 이은혜 두 사람은 결혼 후 2004년 딸 심혜원과 이후 아들 심동헌을 낳아 슬하에 1녀 1남을 두고 있습니다. 심신은 2012년 딸 심혜원과 함께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으며 2021년에는 '퍼펙트라이프'에 출연해 “딸이 방탄소년단 작곡가 회사와 계약을 했다”라며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딸의 근황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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