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칼린
박칼린의 본명은 Kollen Sue Park (칼린 수 팍)이며 한국 이름은 박영미입니다. 나이는 1967년 5월 1일생으로 올해 나이 56세입니다. 고향, 국적은 미국이며 키 172cm이라고 합니다. 학력 사항은 초량초등학교, 경남여자고등학교, 캘리포니아예술대학 첼로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악작곡 석사 졸업이며 가족은 부모님 아버지 박근실, 어머니 아이린 그리고 언니 두명이 있습니다. 현재 소속은 킥 뮤지컬 아카데미 예술 감독입니다.
과거 집안 가족
박칼린의 아버지 박근실은 한국인으로 부산 출신이며 전쟁인 상황이었던 1950년대에 미국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유복한 집안의 엘리트 학생이었고, 키가 190cm가 가까울 정도로 건장한 체격이었다고 합니다. 박칼린의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부산을 장악했을 정도로 부유한 집안이었다고 하네요.
박칼린의 아버지는 대학 재학 중 리투아니아계 이민자 가정의 박칼린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고, 이후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박칼린의 부모님은 양친 모두 한국 전쟁과 2차 세계 대전을 겪은 공통 배경이라는 정서적 공감대로 국제결혼까지 이를 수 있었다고 하며 당시 박칼린의 어머니는 외국인이었지만 아버지에게 아리랑을 불러주면서 마음을 얻을수 있었고, 한국의 팔도 민요는 물론이고 가곡과 이미자의 노래까지 한국 노래와 음악을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박칼린은 어머니에 대해 생명력이 정말 강하신 분으로 시베리아 한복판에서도 맨몸으로 북치고 장구를 치실분이라며 정신력이 강인한 분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박칼린은 미국에서 세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어학을 전공한 박칼린의 어머니는 자식들이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잘하기를 원했던 탓에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3살 때 아버지를 따라 부산으로 온 가족이 귀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칼린은 10살 때 부산에서 살면서 한국 전통 문화를 습득했고 다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으로 이주하여 LA 헐리웃 지역에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박칼린은 어린 시절 첼로와 노래에 재능을 보였다고 하는데요. 언니들 모두 음악에 소질이 있었지만 막내 박칼린의 소질이 너무 좋았고, 일찌감치 음악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합니다. 박칼린의 부모님은 “모두 다 해봐라. 성공을 하든 말든 고른 길에 네가 최선만 다한다면 그걸로 끝이다"라며 항상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성장하던 박칼린은 고등학교 때 1년 동안 다시 한국에서 지내며 부산 경남여자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이후 또 다시 미국으로 가서 캘리포니아 예술대학 진학해 클래식 첼로 전공하였습니다. 박칼린은 당시에도 생소했던 아시아 퓨전 재즈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으며 특히 정체성 혼란으로 힘들어하던 때에 음악에 몰두하며 극복을 하였고, 중학교 시절 접했던 첼로를 전공하게 되어 대학에서까지 전공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박칼린은 서울대학교 대학원 음악과에서 국악 작곡을 전공했으며 한국무용을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한때 판소리의 명창인 박동진의 제자이기도 했는데요.
박동진은 박칼린을 자신의 판소리 직계 전수자로 삼고자 했으나 박칼린이 한국 국적이 아닌 외국 국적이었기 때문에 성사되지 못해 매우 서운해 했다고 합니다. 클래식과 국악을 모두 전공하고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예술적으로 더욱 성장한 박칼린은 언어적으로는 영어가 더 편하지만 정서적으로는 한국인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데뷔 활동
박칼린은 1989년 미주 MBC 가요제 참가하여 대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기도 하며 당시 참가곡은 박칼린의 자작곡인 ‘사막의 비’라는 곡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박칼린은 부산 사투리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어린 시절 부산 지역에서 자라 부산 사투리와 지역 문화를 잘 알고 있었고, 원래 부산 사투리를 사용하던 박칼린은 한국에서 연기를 하며 표준말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1987년 연극 '불의 가면'을 통해 처음으로 음악 감독을 맡게 되었는데요. 당시 연극배우 중에 미국 대학과 서울대 석사 출신의 음악학도였던 박칼린에게 음악 감독을 맡길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고, 박칼린은 그것을 훌륭하게 해내며 1995년 28세의 나이에 대한민국 1호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의 음악 감독을 맡아 본격적으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박칼린은 1세대 뮤지컬 감독으로 1990년대 뮤지컬계에서 명성과 실력을 쌓게 되었으며 2002년 '오페라의 유령', 2004년 '노트르담의 곱추', 2006년 '아이다', 2009년 '시카고' 외에 ‘사운드 오브 뮤직’, ‘렌트’, ‘페임’ 등 70편이 넘는 쟁쟁한 작품의 음악을 담당해 선보이고 연출자로 지금까지 활약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KBS 예능 '남자의 자격' 합창단 편이었던 '하모니'편에 단장으로 출연하여 남다른 카리스마로 '가장 이상적인 리더상'으로 화제를 모으며 대중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는데요. 이후 MBC 예능 '트로트의 민족'에서 심사위원을 맡아 독설을 서슴치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한편, 박칼린은 현재 양쪽 신장에 문제가 있어서 이식을 받지 않으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삶을 선고 받았다고 하는데요. 박칼린은 과거 2010년 한 인터뷰를 통해 "2002년 피로 때문에 병원을 갔다가 양쪽 신장이 모두 손상되었다는 진단을 받았고, 병원에서 신장이식을 권고받았지만 평생 투석해야 한다는 말에 치료를 포기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박칼린은 이에 대해 신경을 안쓰고 살고 있고, 아픈 사람치고는 나름대로 깔깔거리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며 아픈 것을 잊고 산다고 하는데요.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신장을 갈아끼워야 할지도 모르지만 시한부 인생으로 불릴 정도는 아니라며 후회 없이 살아서 만약 5분 뒤에 죽는다고 해도 후회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다 뿌리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세상을 떠나도 여한이 없다고 하네요.
결혼 전남편 이혼 이유
박칼린은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한 뒤, 부산으로 내려와 연극배우가 되었으며 이후 부산 레퍼토리시스템, 부산시립극단 등에서 활동을 하였는데요. 여기서 연극인이었던 박칼린의 전남편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결혼 후 성격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이혼을 하게 되었는데 박칼린은 이혼 사유에 대해 '일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 이혼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박칼린은 이혼 후에도 부산 레퍼토리시스템의 창단 10주년 기념 공연에 전남편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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