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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윤여정은 1947년 6월 19일생으로 올해 나이 76세이며 고향은 경기도 개성시(현재 북한 개성시) 출생입니다. 학력 사항은 이화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중퇴)이며 가족은 여동생 윤여순과 아들 2명이 있습니다. 현재 소속사는 후크 엔터테인먼트 소속입니다.

과거 가족 어머니 동생

과거 윤여정의 어머니는 굉장한 자산가 집의 종손 며느리였으나 6·25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내려왔다고 하며 윤여정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서른셋일 때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윤여정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양호교사로 일을 하며 세 딸을 홀로 키워내셨고, 향년 96세로 2020년 2월 작고하셨다고 합니다.

윤여정의 막내 여동생 윤여순은 LG그룹의 고위 임원으로 첫 여성 임원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4년 퇴임 이후 코칭경영원 파트너 코치로 전업해 활동 중이라고 합니다. 1955년생으로 윤여정의 8살 아래 동생이라고 하며 아이오와주립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박사 출신이고 LG인화원 전무이자 LG 아트센터 대표를 역임하였습니다.

윤여정은 배우들 사이에서도 대본 암기력이 뛰어나고 집중력이 좋은 배우로 알려져있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웅변이나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고 하며 이후 명문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하였습니다.

이후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한 알바로 당시 김동건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였는데 김동건에게 TBC 탤런트 공채 시험을 권유 받았고, 윤여정은 1966년 TBC 탤런트 공채에 응시하여 합격해 TBC 3기 탤런트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배우 생활을 위해 대학을 중퇴하였다고 하네요.

데뷔 활동

윤여정은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데뷔 초기에는 단역, 조연을 했지만 공채합격 3년만에 1969년 MBC로 이적하게 되면서 1971년 MBC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 역을 맡으며 크게 히트해 곧바로 주연급 배우로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당시 윤여정의 악녀 연기가 너무나도 뛰어나 사람들이 욕을 해대는 바람에 거리를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윤여정은 1971년 영화계 진출 직후 거장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에 주연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주인집 남자를 유혹하는 가정부 역을 맡아 최고의 성취를 거두며 스타덤에 올랐는데요. 윤여정은 이 작품을 통해 대종상 신인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하였으며 당시 신문에 천재 여배우로 이름을 올릴 정도로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72년에는 드라마 '새엄마'에서 여주인공을 맡아 다시 한번 대히트를 기록하였고, 1970년대 초반은 윤여정의 시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윤여정은 그렇게 인기 절정이었을 때 전남편인 조영남과 결혼을 하게 되면서 미국 플로리다의 트리니티 신학대학교로 유학길에 오른 조영남을 따라 플로리다로 떠났고, 주부로서 생활하며 배우 생활을 잠시 쉬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결혼 13년 만에 이혼을 하게 되면서 싱글맘으로 다시 돌아와 배우로 복귀하였습니다.

이후 윤여정은 1990년대 드라마 배반의 장미, 사랑과 야망,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간이역,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내가 사는 이유, 꼭지, 네 멋대로 해라, 굳세어라 금순아, 열아홉 순정, 그들이 사는 세상 등 수 많은 작품에서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열연을 펼치며 중견 배우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2003년에는 영화 '바람난 가족'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과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고, 이듬해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에 2년 연속 여우조연상에 후보로 지명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수많은 작품에 참여해 수많은 시상식에서 여러 상들을 수상한 윤여정은 특히 2017년 대중문화예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은관문화훈장 표창을 받기도 했으며 이후 tvN 예능 '꽃보다 누나', '윤식당' 등에 출연하여 쿨한 입담과 탁월한 패션센스를 뽐내며 중견 여배우 중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2021년에는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 순자 역을 연기해 전형적인 할머니의 모습을 깬 독창적 연기로 비평가들의 큰 호평을 받아 미국 배우 조합상에서 영화부문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영국 아카데미와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한국 배우가 되기도 했으며 2021년 4월 26일에는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이는 한국 배우로서 후보 지명과 수상 모두 최초라고 하며 윤여정은 미국 전역의 시상식에서 30여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최근에는 애플TV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파친코'에 캐스팅 되어 화제를 모았는데요. 드라마 '파친코'는 일제강점기를 거친 70년의 세월을 관통하며 한국 이민자 가족의 생애를 그린 드라마로 윤여정은 일제강점기 고국을 떠나 일본으로 이민을 간 주인공 선자 역을 맡았으며 과연 이번에는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결혼 전남편 조영남 자녀

윤여정은 지난 1974년 전남편 조영남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조영남은 1945년생으로 윤여정과 조영남 두 사람의 나이차는 2살 차이가 납니다. 조영남은 1970년 노래 '딜라일라'로 데뷔하였으며 원래 어릴 적부터 가수의 재능외에도 작곡가, 기타리스트, 화가, 작가 등의 재능을 가진 예술가의 피가 흐르고 있는 자유분방한 사람이었습니다. 윤여정은 노래를 잘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조영남을 보고 바로 그 점에 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윤여정은 인기가 절정일 때 조영남과 결혼 후 배우 생활을 접고 미국 플로리다의 트리니티 신학대학교로 유학길에 오른 조영남을 따라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플로리다에서 1975년에 큰 아들 출산 이후 1982년에 둘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13년의 결혼 생활을 끝으로 1987년 1월 이혼을 발표하게 되면서 싱글맘을 귀국하게 되었는데요.

시간이 흘러 밝혀진 두 사람의 이혼 사유는 조영남의 외도였으며 결혼생활 중 조영남은 젊은 여자를 찾아 외도를 하는가 하면 윤여정에게 못 생겨서 데리고 잘 수 없다며 더 좋은 여자가 생겼다는 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도 서슴치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이런 스트레스로 윤여정은 술과 담배를 시작하게 되었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하네요.

이혼 당시 윤여정은 여기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조영남은 결벽증이 너무 심해서 못 살겠다 싶었다며 자신이 이혼을 당했고, 전 재산을 모두 주고 빈털털이가 되었다며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고 하는데요.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으며 윤여정은 당장에 생계가 곤란할 정도로 어려운 처지였고, 게다가 아들 두명을 모두 윤여정이 키워야 하는 상황에서 위자료라고 받았던 것은 당시 신동아 아파트 전세값 5,500만원 뿐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38세였던 윤여정은 플로리다의 퍼블릭스 식료품점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최저 임금 2.75달러를 받으며 두 아들을 부양할 생각을 하였고, 언어 장벽과 한국에서의 낙인의 무게 때문에 계산원으로 일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후 한 인터뷰를 통해 밝혀진 바로는 두 사람의 결혼 생활동안 조영남은 바람끼가 다분했고 돈을 한 푼도 벌지 않았으며 결국에는 윤여정이 모아둔 돈을 싸그리 다 탕진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윤여정은 결혼생활 동안 굉장히 헌신적이었고, 두부 구하기가 어려웠던 70-80년대는 미국에서 두부를 좋아하는 조영남을 위해서 직접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윤여정은 지금까지 어느 자리에서건 전 남편 조영남에 대해 비난은 물론 변명조차 한 적이 없어서 대인배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요. 이에 대해 윤여정은 그냥 조영남이 너무 싫어서 언급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조영남은 한 방송을 통해 "윤여정이 입을 열면 나는 사회적으로 매장됐을 것"이라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이혼 후 윤여정은 두 아들로 인해 생활형 연기자로 뛰어들었지만 당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이혼녀들의 배우 생활이 녹록치가 않았는데요. 그럼에도 두 아들의 양육을 책임지기 위해 단역부터 다시 연기를 시작한 윤여정은 당시 어떤 역할이라도 맡기 위해 스타였던 때의 자존심은 무시했다고 합니다.

윤여정은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연기력으로 모든 난관을 돌파해 나갔는데 하지만 경제 사정이 차츰 나아지는 것도 잠시 둘째 아들이 틱 장애를 겪으며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둘째 아들은 초등학생이었을 때 이 장애에 걸렸고, 그 원인이 애정결핍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윤여정은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며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다행이도 윤여정은 아들 두 명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냈고, 두 아들 모두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으로 1975년생 큰 아들 조얼은 콜롬비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ABC 방송국의 뉴스팀에서 근무하다가 패션 브랜드 DKNY 창립자인 도나 캐런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작은 아들 조늘은 틱장애를 극복하고 뉴욕 대학교를 졸업한 인재로 음반사 유니버설 산하의 힙합 레코드쪽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영남은 현재 아들들로부터 제대로 된 아버지 대우도 받지 못하고 양딸을 입양하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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