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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춘화

하춘화는 1955년 6월 28일생으로 올해 나이 68세입니다. 고향은 전라남도 영암군 출생이며 키 162cm, 몸무게 50kg, 혈액형 A형입니다. 학력은 서울수송초등학교, 정화여자중학교,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 경남대학교 병설 산업전문대학 가정학 전문학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가정학 학사,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 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 박사입니다. 가족은 부모님, 4자매 중 둘째, 남편이 있습니다. 종교는 가톨릭입니다.

 

과거

하춘화는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잠시 살았고, 이후 광주광역시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서울로 상경하였습니다.

하춘화 아버지 하종오는 딸의 재능을 일찍부터 알아봤고, 서울 동아예술학원에 다니게 하였는데요. 하춘화는 당시 동화예술학원에서기타를 맡은 8살 깅영환과 아코디언을 맡은 9살 정선과 함께 학원 3대 영재였고, 하춘화와 삼남매라는 그룹으로 종로 4가 천일극장에서 무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춘화는 8개월 동안 노래를 배우고 난 뒤,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데뷔 활동

하춘화는 1961년 만 6세 나이에 노래 '효녀 심청 되오리다'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해로 하춘화는 0인치 LP 스튜디오 앨범으로 데뷔 후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춘화는 당시 최연소 가수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이클 잭슨이 5살의 나이로 데뷔하여 그 기록이 깨지게 되었습니다.

하춘화는 1966년 '아빠는 마도로스'를 발표하여 이 곡은 크게 히트하였고, 1971년 발표했던 '물새 한 마리'에 이어 고봉산과 함께 '잘했군 잘했어'를 불러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는데요. TBC에서 4년 연속 여자가수상을 수상하면서 대한민국 정상급 여가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시기에 하춘화는 무명이었던 이주일을 꼭 자신의 무대에 사회자를 시켜야 한다며 같이 일하게 했는데요. 이주일은 하춘화 덕분에 집을 샀다며 하춘화가 평생 은인이라고 했습니다. 하춘화는 이후 1977년 익산시 아리역에서 공연을 하다가 다이너마이트를 실은 열차가 폭발하는 사고를 겪게 되었는데요. 이때 이주일이 목숨을 구해주었습니다.

이 사고로 하춘화는 한동안 가수로서의 활동에 지장을 받게 되었고, 1979년 3월 27일에는 경남대학교에 입학한 뒤, 학업과 결혼 준비로 인하여 은퇴를 선언하였습니다.

하춘화는 은퇴 선언 2년 만인 1981년에 가수로 복귀하여 '우리 사랑 가슴으로', '연인의 부르스' 등의 노래를 발표하였고, 1983년에는 자신이 아끼는 무대의상 150벌을 후배 가수들에게 선물하며 나눠주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춘화는 영암 아리랑, 아리랑 목동, 날 버린 남자, 연하의 남자, 사랑의 물레방아 등 무수히 많은 곡들을 히트시켰습니다. 1985년에는 남북 예술인 교환공연으로 대한민국과 북한에서 각각 최고의 가수들을 상대방에게 파견하여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하춘화는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자격으로 평양에 가서 3박 4일 동안 공연을 하였습니다.

1989년에는 노래 '날 버린 남자'가 큰 사랑을 받으며 하춘화는 다시 각광받기 시작하였고, 1991년 총공연 횟수 8000회를 기록하면서 최다 개인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등록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2002년에 댄스 트로트 '연하의 남자'를 불러 하춘화는 춤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학업을 위해 잠시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던 하춘화는 2007년에 다시 복귀하여 '나이야 가라' 등의 신곡을 발표하였고, 2019년에는 '마산항엔 비가 내린다'를 발표하여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동안 공연과 학업을 병행해왔던 하춘화는 현재 공연예술 석사 학위, 예술철학 박사 학위 등 학사 3개, 석사 1개, 박사 1개로 학위를 5개 보유하고 있습니다. 국내 가수 중에서는 가장 갯수가 많다고 하는데요. 4자매 중 둘째로 태어난 하춘화는 다른 자매와 달리 혼자 박사학위 없이 가수로 생활하다보니 학위를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춘화는 평생 기부활동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19살 때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많은 기부를 해왔는데 200억 이상 기부하여 연예계 최고의 기부 스타 1위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춘화는 2011년에 데뷔 50주년을 맞아 '하춘화와 함께하는 콘서트'를 개최하였고, 이 콘서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불우이웃 돕기에 기부하여 화제를 낳기도 했습니다.

 

결혼 전남편 이혼 사유

하춘화는 1981년 사업가 정운창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가수 활동 재개로 의견이 부딪히게 되는데요.

당시만 해도 여자들의 바깥 활동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고, 결혼한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아서 10개월 만에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혼 남편 이인순 자녀

하춘화는 1995년에 지금의 남편 이인순과 재혼을 하였습니다. 하춘화 남편 이인순은 하춘화보다 4살 연상이며 직업은 당시 KBS 기획조정실 관리부차장이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중매로 만나게 되었고, 6개월 간의 연애 끝에 1995년에 결혼에 골인하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으며 사실 신혼 초에 임신을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유산을 한 뒤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춘화는 이후 입양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결국 하지 않았습니다. 

하춘화는 남편이 학구열을 깊이 이해해줘서 공부와 일을 같이 했다고 하는데요. 또한 바쁜 스케줄로 인해 가정에 소홀할 수 밖에 없었음에도 항상 옆에서 묵묵히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하춘화는 남편에게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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