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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심수봉 나이 고향 본명 프로필 남편 이혼 자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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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

심수봉의 본명은 심민경이며 1955년 8월 28일생으로 올해 나이 68세입니다. 고향은 충청남도 서산시 출생이며 혈액형 O형입니다. 가족은 부모님 아버지 심재덕, 어머니 장형복과 언니, 이부 남동생 1명, 이부 여동생 1명 그리고 남편 김호경, 자녀 2남 1녀가 있습니다. 학력은 인화여자고등학교, 명지대학교 경영학 학사이며 종교는 개신교입니다. 소속사는 라이트웨이브 엔터테인먼트, 루체 엔터테인먼트 입니다.

과거

심수봉의 본명은 심민경이며 어릴 때 가수로 성공하려면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권유해 스님이 지어준 법명인 심수봉으로 예명을 지었다고 합니다.

심수봉은 아버지 심재덕과 어머니 장형복이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재혼을 하게 되면서 이부 남동생과 이부 여동생이 한명씩 있다고 합니다.

심수봉의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음악을 했던 집안이라고 하며 주로 재즈를 하였고, 아버지, 큰아버지, 고모 등도 모두 음악을 했을 정도로 음악가 집안이라고 합니다. 이런 집안의 환경 속에서 심수봉 역시 음악인의 삶을 걷게 되었는데요.

심수봉은 서산초등학교를 다니다 어머니가 이혼 후 이사를 하게 되어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 은로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이후 영등포에 있는 여중에 입학했으나 입원 치료를 위해 또 다시 2년을 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인천 인화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해 만 19세인 1974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는데요. 이후 1975년 박정희가 청와대 연회에 심수봉을 불러 노래를 시킨 일이 계기가 되어 음반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심수봉은 당시 음악적인 재능이 매우 뛰어나 여러 악기에 능통했다고 하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데요.

1976년에는 남산 도쿄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는데 당시 가수 나훈아가 우연히 손님으로 와서 '물레방아 도는데'를 불렀고, 나훈아가 주선하여 음반을 녹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음반사와 분쟁이 생겨 음반발매는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심수봉은 재수를 한 다음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들어가게 되었고, 1978년 제 2회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했으나 입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심수봉이 부른 '그때 그 사람'이 큰 히트를 치면서 심수봉은 이후 가수로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데뷔 활동

심수봉은 1978년 MBC 대학가요제 '그때 그 사람'으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심수봉은 트로트 가수이지만 보기 드물게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를 보여주며 히트곡들은 거의 대부분 직접 작사, 작곡하였는데요.

대표곡으로는 그때 그 사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엔 난 몰라, 미워요, 비나리, 무궁화 등이 있으며 후배 가수들이 많이 리메이크하였습니다. 특히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는 러시아 가요를 번안하여 히트를 쳤으며 조성모의 히트곡인 '후회' 역시 심수봉의 특유의 스타일로 리메이크 한 곡이라고 합니다.

심수봉은 최근 '불타는 트롯맨'에 손태진의 이모 할머니로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결혼 전남편 이혼 사유 자녀

심수봉은 과거 두 번의 이혼을 경험하였다고 합니다. 심수봉은 과거 10.26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치료를 받기 위해 한도사 혹은 심령도사라고 불리는 한기석과 연인 사이가 되어 동거를 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한기석은 심수봉과 결혼 전 1남 1녀 자녀까지 있는 유부남이였는데 이후 이혼을 하고 심수봉과 동거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심수봉의 어머니가 이들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아 심수봉이 많은 심적 고통을 겪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동거 사실은 이후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이후 심수봉은 약혼을 하게 되었는데요. 이후 결혼을 하게 되면서 1981년에 아들 한승현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심수봉은 아들 한승현을 낳고 보름 만에 갓난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고 하며 전남편 한기석과의 이혼 이유에 대해 "살아보니까 저와는 인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분은 아내를 거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라며 성격차이라고 밝혔습니다.

심수봉의 아들 한승현은 현재 기획사 대표로 어머니 심수봉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해 스케쥴을 직접 관리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또한 뛰어난 컴퓨터 실력으로 그래픽 화사 대표로도 일하고 있으며 엄마 심수봉의 곡 '심연, 그 밖으로'를 직접 작사,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심수봉은 첫번째 이혼 후 1983년에 3살 연상 박진섭과 재혼을 하였는데요. 전남편 박진섭의 직업은 사업가로 심수봉이 출입하던 밤무대의 사장으로 심수봉이 노래를 부르다가 만남을 가졌다고 합니다. 심수봉은 두번째 결혼 후 1984년에 딸 박성희를 낳았는데요. 하지만 결혼 9년 만인 1992년에 이혼을 하였고, 두번째 남편 박진섭과의 이혼 이유에 대해 성격차이라고 밝혔습니다.

심수봉은 두번째 이혼 후 1995년 지금의 남편 김호경을 만나 결혼을 하였으며 심수봉 남편 김호경 역시 심수봉과 결혼 전에 이혼으로 결혼에 실패를 했고, 심수봉과 재혼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심수봉과 남편 김호경은 가수 김흥국의 주선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하며 심수봉이 남편을 먼저 좋아하였다고 하는데요. 당시 라디오 방송 PD였던 남편이 심수봉의 섭외를 위해서 잘해주었고, 이것을 자신을 좋아하는 줄 오해하여 남편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합니다. 심수봉은 그 마음을 담아서 '비나리'라는 곡을 부르며 청혼을 했다고 합니다. 심수봉은 남편 김호경이 가정이 있는 유부남인 줄 알았다가 자신과 똑같이 이혼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감정이 생겼다고 하네요.

하지만 심수봉이 재혼을 할 당시 심수봉의 아들과 딸은 많이 방황을 했다고 하는데요. 심수봉이 재혼을 한 후에도 아이들이 적응하지 못해 재혼한 남편과 9년간 떨어져서 지내기도 했으며 이러한 이유로 심수봉은 한결같이 기다려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현재는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심수봉은 두번째 남편 박진섭과 이혼을 하게 되면서 그 사이에서 낳은 딸 박성희와 헤어지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딸과 연락이 끊겨서 헤어져 살며 만나지 못했는데 헤어진지 9년만에 9살이었던 어린 딸이 유모를 통해서 핑클 사인을 받아다 달라는 부탁을 했고, 이것을 계기로 딸과 계속해서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다시 만난 딸 박성희와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다고 하며 심수봉 딸 박성희는 2018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 참석하여 심수봉 대신하여 대통령 표창을 대리 수상을 하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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