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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자

김연자는 1959년 1월 25일생으로 올해 나이 64세입니다. 고향은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 출생이며 키 154cm, 몸무게 47kg, 혈액형 O형입니다. 학력은 광주수피아여자중학교 (중퇴, 명예졸업),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명예졸업)이며 종교는 개신교입니다. 가족은 어머니 이옥순과 여동생 김수진이 있습니다. 소속사 홍익기획, YJKcompany, 온웨이즈  입니다.

과거 집안

김연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으로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김연자의 아버지는 노래 잘하는 딸이 최고의 자랑이었고, 공부할 때보다 노래할 때 더 많은 칭찬을 해주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이발소에 온 손님들 앞에서도 매일 노래를 시켜 김연자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이발소에서 노래 부르며 자랐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김연자를 중학교 3학년 때 중퇴를 시키고 가수를 하라고 서울 작은아버지 댁으로 보냈다고 하는데요. 이후 김연자는 TBC 방송국이 주최했던 '전국가요 신인 스타'라는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고, 당시 15살이었던 김연자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18살이라고 속이고 데뷔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 가수로 활동하면서 밤업소에도 다녔다고 하는데요. 김연자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워 어머니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김연자는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17살 차이 나는 동생과 함께 단칸방에서 지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김연자는 데뷔 후 집안에 가장이 되어야 했고, 두 동생의 대학생활까지 뒷바라지하며 학업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가수 활동에 매진해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고 합니다.

데뷔 활동

김연자는 1974년 TBC '전국가요 신인스타쇼'에서 우승하며 같은 해 1974년 '말을 해줘요'로 가수 데뷔를 하였습니다. 김연자는 데뷔 후 나이 어린 여가수로 큰 주목을 받았으며 1977년, 19살 나이에 가족의 반대를 무릎쓰고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여자의 일생'을 발표하면서 일본에서 데뷔를 하였습니다.

김연자는 한국에서 트로트 가수로 시작했으니 일본에 가서 엔카를 한 번 제대로 불러보자고 결심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준비없이 무작정 일본 진출을 한 탓에 결국 김연자는 별다른 성과없이 3년만에 일본 활동을 접고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김연자는 “그 시절은 전쟁 같았다”라고 고백하며 그러나 그 힘든 3년이라는 시간이 없었다면 이후에 일본에서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라고 심경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김연자가 한국으로 귀국한 1980년은 정부가 민심을 얻기 위하여 통행금지 해제 조치와 더불어 경기 부양 정책을 취했기에 밤업소들이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는데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김연자는 한국에서 재기에 성공하였고, 1980년 '노래의 꽃다발'이 한국의 음반 시장 최대 360만 장의 판매를 기록하였습니다.

이어 1984년에는 한.일 동시 발매한 '수은등'이 한국에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였고, 1986년에는 서울 올림픽 찬가 '아침의 나라에서'로 일본에서 다시 데뷔하게 되면서 이 곡은 일본에서도 대히트를 기록해 김연자는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 엔카계의 거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김연자는 2009년에 일본 활동 22주년을 끝으로 대한민국 활동을 공식화했으며 귀국과 함께 경쾌한 리듬의 트로트 '10분 내로' 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2010년 이후에는 국내 활동에 주력하였으며 이후 2013년에 정통에서 벗어난 EDM과 트로트를 접목시킨 장르의 '아모르 파티'를 선보였습니다.

이후 2016년에 '아모르파티'가 역주행하며 젊은 세대들에게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김연자는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결혼 전남편 김호식 이혼사유 자녀

김연자는 1982년에 전남편 김호식(오카 히로시)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김연자의 전남편 김호식은 김연자보다 18살 연상으로 김연자의 어머니와는 2살 차이, 아버지와는 7살 차이밖에 나지 않으며 일본에서 색소폰 연주가 겸 밴드 지휘자로 활동하였고, 클리어톤즈 단장이라고 합니다.

김연자와 전남편 김호식은 1977년 김연자가 일본으로 처음 진출했을 때 방송에 출연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김호식은 밴드 지휘자였다고 하며 낯선 외국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힘들 때 전 남편 김호식이 먼저 다가와 한국말로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고 합니다.

일본과 한국 활동을 활발히 하던 김연자는 1980년 한국으로 귀국하여 가수 활동을 한 뒤, 1982년 4월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이후 2012년 5월 이혼했으며 이혼 사유에 대해서는 남편과의 성격차이로 인한 갈등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연자와 전남편 김호식 사이에 자녀는 없으며 김연자는 과거 오랜 결혼 생활에도 아이가 없는 것에 대한 질문에 “신경 쓸 시간도 없고, 둘 다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연자가 이혼 후 밝힌 바에 의하면, 아이를 갖지 않은 것 역시 남편의 강요에 의한 것라고 하는데요. 남편이 아이가 필요 없다며 갖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김연자는 젊었을 때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남편 들어주지 않았고, 부부 생활의 중심은 노래로 시작해 노래로 끝났다고 하네요.

김연자는 이혼 후 모든 것을 잃어 힘든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요. 일본에서 활동할 당시 전적으로 남편을 믿고 의지했던 김연자는 자신의 개런티가 얼마인지 물어본 적도 없고 은행에 가본 적도 없이 오직 남편만 믿고 노래를 불렀지만 이혼 후 위자료 뿐 아니라 재산 분할 등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혼 남자친구 홍상기

김연자는 전남편과 이혼 후 지금의 소속사 대표를 만나 열애 중인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12년째 교재 중인 7세 연상인 남자친구 홍상기  대표와는 11년째 동거 중으로 결혼할 예정임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김연자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원에 다니며 노래 연습을 했는데 그때 같은 학원에 다녔던 학생이 바로 지금의 남자친구 홍상기라고 하며 알고 지낸 세월만 50년이라고 하는데요. 김연자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50년 지기가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밝히며 두 사람은 사귀자는 말없이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김연자가 힘들었던 시절 자신의 곁을 지켜준 사람 역시 바로 남자친구 홍상기였으며 김연자는 전 남편과 이혼 후 국내 복귀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혀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으나 귀국 후 달라진 국내 가요 트렌트에 적응하지 못했던 김연자가 아모르 파티로 재기할 수 있었던 건 현재 소속사 대표인 남자친구의 도움이 컸다고 합니다.

그렇게 김연자는 홍상기 대표의 도움으로 2009년 국내 무대 ‘10분 내로’라는 곡으로 복귀하였고, 2013년 발표곡 EDM과 트로트를 결합시킨 ‘아모르파티’가 4년 만인 2017년 인터넷에서 재조명 받으며 큰 반향을 일으키며 전 세대를 아울러 제2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또한 남자친구 홍상기 대표는 가수 송대관과 폭언 논란으로 진실 공방을 벌여왔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김연자는 남자친구 홍상기에 대해 "일본에서 2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어렵게 활동할 때 손을 건네준 은인이다. 뭘 해도 멋있게 보인다"라고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김연자는 남자친구와 준비 중인 '김연자 기념관'이 완공되면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김연자 기념관은 전남 영광군 불갑사 인근에 조성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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