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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구창모 나이 아내 부인 박미순 자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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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창모

구창모는 1954년 4월 27일생으로 올해 나이 69세입니다. 고향은 경기도 인천시 북구 출생이며 종교는 개신교입니다. 학력 사항은 배재고등학교, 홍익대학교 이공대학 전자전기공학과이며 가족은 아내(부인) 박미순과 아들 구교현이 있습니다.

과거

구창모는 어릴 때부터 노래에 대한 재능을 타고 났다고 하는데요. 8살 때 이웃집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 나왔는데 그걸 단숨에 외워서 매일 밤 가족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주었고, 그때부터 노래하는 건 타고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후 구창모는 대학입학에 실패하고 전문대학에 진학하여 편입을 준비했는데 결국 홍익대에 편입하고 대학에 진학해서도 구창모는 노래를 계속하여 해변가요제에 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데뷔 활동

구창모는 1978년 제1회 TBC 해변가요제 출전하여 ‘구름과 나’라는 노래로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구창모는 이때 배철수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고 하며 배철수 역시 이때 구창모를 눈여겨 보았다고 합니다. 

당시 ‘활주로’의 드러머와 보컬까지 맡고 있었던 배철수는 해변가요제 2차 예선에서 '블랙테트라'라는 밴드로 출전한 구창모를 보았는데 당시 구창모는 꽃미남 스타일로 외모뿐만 아니라 목소리 역시 예술이었으며 배철수는 엄청난 미성의 구창모의 목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배철수는 구창모를 기억하고 있다가 이후 구창모에게 함께 밴드를 하자고 제안했고, 송골매 2집을 준비하던 시기에 그를 영입했다고 하는데요.

구창모는 1981년 송골매의 2집부터 합류하여 리드보컬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송골매는 구창모의 영입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구창모가 작사 작곡한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모두 다 사랑하리', '다시 한 번' 같은 곡들이 10대와 20대 사이에서 크게 히트를 하면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시 가수 조용필의 인기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으며 송골매는 그룹사운드로는 유일하게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를 독식하다시피했고, 당시 음반사 사장이 보너스로 거액의 돈을 주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송골매는 예능 프로, 광고까지 발을 뻗쳤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고, 이들을 주연으로 한 영화가 무려 세 편이나 제작되었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송골매’의 인기는 구창모가 참여한 4집까지 계속되었는데요. 하지만 구창모는 높은 인기에 솔로 활동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고, 마침 다른 멤버들과 음악적으로 마찰도 잦아지게 되고 많은 스케줄에 목 상태도 안좋아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갈등이 심화되어 구창모는 1985년 송골매를 탈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송골매’가 오래가는 밴드가 되길 원했던 배철수는 구창모의 탈퇴를 안타까워 했지만 현재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며 구창모가 다시 방송 복귀를 하게 된 계기도 배철수 덕분이라고 합니다. 배철수는 '1%의 우정'에 MC로 출연했을 당시 송골매 활동 시절에 대한 비화를 밝히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내 얼굴이 좀 편안해졌지만 송골매로 활동 할 당시 성격이 모가 나 있었다. 근데 구창모가 성격이 좋아 날 다 받아줬다. 딱 한 번 기분 나빴을 때는 송골매에서 탈퇴했을 때다. 우리를 버리고 솔로로 독립하였을 때였는데 곧 다시 좋아졌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구창모는 1985년 송골매 탈퇴 이후 솔로로 데뷔해 ‘희나리’로 크게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로도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문을 열어‘ 등의 노래가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희나리‘의 번안곡인 '기허풍우(幾許風雨)'는 홍콩 영화 '영웅본색'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후 구창모는 1990년 스스로 회사를 차릴 정도로 가요계에서 입지를 다지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이후 가요계의 PD 사건에 휘말리면서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1991년 가요계에서 결국 은퇴를 하며 방송계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PD사건은 가수들의 매니저들이 쇼 프로그램 담당 PD에게 돈을 주면서 자기 가수들의 노래를 홍보한 사건으로 이때 수많은 음악 방송 PD들이 검찰에 구속이 되었으며 구창모는 이 사건으로 인해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은 후 연예계 생활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구창모는 '내가 왜 가수를 했나'하는 생각과 함께 가수를 하고 싶지 않아 은퇴를 결심하였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사건의 충격으로 가수를 은퇴한 구창모는 이후 오히려 사업에 대한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구창모는 1991년 7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음악 축제에 초청받았다가 당시 현대종합상사의 자동차 본부장을 만나서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그의 권유로 카자흐스탄 제 1호 외제차 딜러가 되었고, 1995년까지 대략 40억원을 벌 정도로 사업은 성공적이었다고 하는데요. 이후 구창모는 현지에 눌러앉아 자동차 관련 사업가로 변신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1997년 홍콩에서 녹용 사업이 실패하면서 6개월 만에 30억 원을 손해를 보게 되었고, 그때까지 벌어 놓은 돈을 모두 잃게 되었는데요. 구창모는 이에 주저앉지 않고 1999년 중국으로 건너 가 한류 열풍의 주역인 한국 드라마 TV 프로그램 판권 사업과 시간이 조금 흐른 뒤, 키르기스스탄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건설업도 시작하게 되면서 현재 키르기스스탄에서 최대 규모의 아파트를 건설하는 아티스 글로벌의 대표로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구창모는 2000년대 중반부터 가요계에 다시 컴백해 잠깐씩 공연이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였고, 2011년에는 라디오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가수로 활동했을 당시에도 MC를 맡아본 적은 없으며 그동안 사업을 하다가 오랜만에 방송에 복귀하다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구창모는 이후 2015년 '구창모의 노래' 라는 앨범을 발표해 여러 공연 행사를 뛰기도 했습니다.

한편, 구창모는 40년 만에 배철수와 다시 만나 송골매 투톱 체제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고 하는데요. 배철수는 10여 년 전부터 계속 구창모를 만나오며 재능 있는 사람이 노래를 안 하고 있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고, 구창모에게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송골매 공연을 다시 한번 하고 다시 노래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구창모와 배철수 두 사람은 오는 9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송골매로 다시 뭉쳐 전국 투어 콘서트 첫 무대에 오른다고 하며 이를 시작으로 11월까지 '2022 송골매 전국투어 콘서트 : 열망(熱望)'을 통해 무려 38년 만에 함께 송골매의 히트곡을 들려준다고 합니다.

결혼 아내(부인) 박미순 자녀

구창모는 지난 1997년 5월 8일 아내(부인) 박미순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구창모 아내 박미순은 1964년생인 59세로 구창모와 10살 차이가 난다고 하며 직업은 의류사업가로 활약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사람은 홍콩의 지인의 생일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구창모 아내 박미순은 홍콩을 기반으로 하는 의류사업가로 활약하고 있었고, 구창모는 사업 실패로 힘들었을 떄 홍콩에서 지금의 아내인 박미순을 만나게 되면서 재기에 성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구창모는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아내 박미순을 보고, 여러 명이 함께 있었는데도 아내의 모습 만 눈에 들어왔다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나이도 모르고 결혼을 했는지도 몰랐지만 생전 처음으로 결혼할 여자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구창모는 아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모임이 끝난 뒤 다시 만나기 위해 수소문했고, 아내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데만 무려 3개월이 걸렸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아내는 구창모가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라는 사실 알고 있었고, 또한 나이차이가 10살이라는 점 때문에 구창모와 거리를 두었다고 합니다.

구창모는 이러한 문제로 애를 먹었고, 그래서 무려 1년 동안 홍콩을 16번이나 갔다고 하는데요.사업 때문에 조언을 구하고 싶다는 핑계를 대서 어렵게 데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구창모는 아내와 만나면 만날수록 결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러한 감정은 처음이었기에 꾸준히 설득해 만난 지 1년 만에 1997년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결혼 후 3년 만에 굉장히 어렵게 아들을 얻었다고 하는데요. 결혼 후 실험관 아기까지 시도했지만, 임신이 잘 되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새벽 기도를 시작하게 되면서 그 기도 덕분에 아들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혼 후 아내와 아들은 한국에서 지내고 구창모는 사업 때문에 한국과 외국을 오가고 있다고 하네요.

사실 구창모와 아내 두 사람은 결혼 초기에 서로 맞지 않아서 엄청나게 싸웠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제는 서로 구력이 생겨서 싸우더라도 금세 잊어버리고 화해를 한다고 합니다. 구창모는 아내에 대해 "아내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믿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다. 게다가 본인이 직접 일을 해봤기 때문에 통이 크다. 당시에 내가 사업 실패로 상심에 빠져 있었는데 아내가 격려를 많이 해주었다. 지금도 사업에 어려운 점이 있으면 아내에게 조언을 구한다." 라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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