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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인천상륙작전 줄거리 결말 역사적 사실
    영화 2019. 11. 2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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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인천상륙작전'

     

    장르 : 전쟁

    감독 : 이재한

    출연 : 이정재, 이범수, 리암 니슨, 진세연

    개봉 : 2016. 07.27

     

     

    인천상륙작전 줄거리

    6.25전쟁의 대반전 드라마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한 달 만에 낙동강까지 밀리게 되어 한국군과 연합군은 경상도에 포위 당합니다.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전세를 뒤집기 위해 북한군 후방을 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인천상륙작전을 기획하지만 인천 앞바다는 얕은 데다가 기뢰가 설치되어 있어서 너무 위험한 작전이 되어버렸죠.

     

    맥아더는 기뢰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8인의 첩보부대를 보냅니다.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이정재)는 북한군 박남철을 죽이고, 박남철 행세를 하여 인천 방어 사령부로 갑니다.

    인천 방어 사령관 림계진(이범수) 몰래 설치 도면을 훔칠 계획이었죠.

     

    장학수는 인천에 배치된 북한군의 장사정포와 병력을 확인하게 되는데, 기뢰의 수와 배치는 알지 못합니다.

     

    장학수는 기뢰의 위치 지도를 찾기 위해 림계진을 유인해서 사무실을 비우게 만든 후, 다른 요원들이 기뢰를 설치한 도면을 빼오기로 하며 림철진 집무실에 침입합니다.

    하지만 림계진의 부하 류장춘이 예상치 못하게 너무 일찍 사무실로 돌아오는 바람에 계획은 꼬여버리고, 많은 사상자를 내게 됩니다.

    기뢰 설치 도면 마저 불태워지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림계진으로 인해 장학수도 위험해집니다.

     

    장학수는 침투한 요원이었던 이발사 최석중(김병옥)에게 도움을 받아 숨게 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체를 들통나 버리고, 최석중은 모진 고문을 받다가 숨지고 맙니다.

     

    이때 켈로부대 서진철(정준호)이 그를 구출하러 오고, 다행히 죽을 위기에서 겨우 탈출에 성공합니다.

     

    목표인 기뢰 설치 도면이 불에 타 사라졌으니 도면을 아는 류장춘이라도 납치해서 잡아가기로 합니다.

    그들은 간호사로 침투해 있던 한채선(진세연)의 도움으로 류장춘 납치에 성공합니다.

     

    류장춘을 심문한 결과 기뢰의 정보를 모두 알아내고, X-RAY 첩보작전 성공으로 드디어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됩니다.

     

    맥아더 장군은 장학수의 X-Ray 팀에게 또 하나의 특수임무를 요청합니다.

    9월 15일 자정, 군함이 들어갈 수 있도록 팔미도(인천, 영흥도, 실미도 사이에 있는 등대)의 등댓불을 밝히고, 함대를 유도하는 것!

     

    작전은 시작되고, 켈로 부대는 팔미도에서 등대를 밝힙니다.

     

    그러나 림계진은 인천으로 오는 맥아더 장군 부대를 막기 위해 또 다른 폭파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을 알게 된 장학수는 그것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인민군을 막기 위해 돌진합니다.

    그렇게 장학수는 조명탄을 쏴서 림철진을 죽이고, 장렬히 전사하게 됩니다.

     

    해군 첩보부대와 켈로부대 요원들의 희생 덕분에 림계진의 계획은 모두 무너지고, 인천상륙작전은 인천 침공과 서울 진격에 성공으로 끝이 납니다.

     

    인천상륙작전 역사적 사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대반전을 이룬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북한군은 40일 만에 낙동강 이북을 모두 점령했고, 이에 반전을 기하기 위해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합니다.

     

    맥아더는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 당시 뉴기니 점령 작전을 통해 상륙작전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당시 상륙작전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섬을 차례대로 점령하는 것이 아닌, 중간에 고립된 섬을 앞뒤에서 공격하는 것이었죠.

     

    인천상륙작전 이틀 후, 썰물과 밀물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주는 인천항의 모습

    그러나 미국 지도부에서는 인천이 아닌 군산이나 주문진을 권장했습니다.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인천항은 7~10미터에 달하는 간만의 차가 있었기 때문에 상륙 가능한 시간은 겨우 2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으며 제시간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물높이가 낮아지면 큰 군함들은 갯벌에 걸려서 오히려 공격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내세우며 설득했습니다. 낙동강 전선의 북한군에게 군수물자를 공급해주는 인천과 서울의 보급로를 끊어야 함을 주장했죠.

     

    맥아더 사령부는 한국군에게 첩보활동과 예비 작전을 요청하여 8월 18일과 20일에 덕적도와 영흥도를 점령하여 상륙부대의 길을 터놓았습니다.

     

    북한군이 인천상륙작전에 대비하지 못하게 하고, 기습작전을 펼치기 위해 다른 곳에 상륙하는 것처럼 기만행위를 벌이기 위해 삼척, 군산, 남포, 장사에 거짓 공격을 가하기도 하였죠.

     

    9월 15일 새벽, 인천 앞바다에 집결한 배들은 멀리 팔미도의 등대가 켜지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팔미도 등대 특공대가 침투하여 등대를 확보한 것이죠.

     

    인천상륙작전은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하루 2번, 새벽 5~7시와 오후 5~7시 밀물시간에 나누어 상륙작전을 해야 했습니다.

    새벽 6시 30분, 첫 번째 상륙부대가 상륙했습니다. 한국 해병대 중대와 미국 해병대 대대는 인천 앞의 월미도를 점령하였고, 오후 5시 30분 2차 상륙을 시도했습니다. 이 공격으로 인천의 북부와 남부를 동시에 공격하여 점령하게 되었죠.

     

    인천상륙작전은 5000 대 1의 성공 확률을 가진 위험하고 불가능 했던 작전이었고, 그렇기에 기습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실제 김일성과 북한도 맥아더가 상륙작전을 한다는 정보를 갖고 방어하려고 했으나 인천일 것이라는 확신을 하지 못했고, 중국의 마오쩌둥마저도 상륙지점이 군산일 것이라 예상했죠.

    또한 인천상륙작전이 예상보다 빠르게 감행되었고, 북한군은 인천, 경기지역에 겨우 2만 명 정도밖에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후 인천에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

    그렇게 인천은 하루 만에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군 및 연합군은 20명 정도의 전사자와 170명 정도의 부상자가 있었고, 북한군은 완전히 분쇄되었습니다.

    대규모 상륙작전임에도 불구하고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만들어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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