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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덕혜옹주 줄거리 결말 역사왜곡
    영화 2019. 11. 21.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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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덕혜옹주'

     

    The Last Princess , 2016

    장르 : 서사, 드라마

    감독 : 허진호

    각본 : 서유민, 권비영(원작)

    출연 : 손예진, 박해일 등

    개봉 : 2016. 08. 03

     

    덕혜옹주 줄거리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덕혜옹주' 그녀의 숨겨진 이야기.

     

    덕혜옹주를 아시나요? 보신 적 있으십니까?”

    영화의 시작은 어느 신문사 기자가 덕혜옹주를 찾으면서 시작됩니다.


    고종황제가 환갑을 맞이하던 , 덕수궁에서 여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아이가 바로 고종이 뒤늦게 양귀인으로부터 얻은 얻은 고명딸, 덕혜였습니다. 덕혜옹주(손예진) 고종의 딸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로, 공주가 아닌 ‘옹주 부르는 이유는 후궁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고종은 덕혜를 위해 덕수궁 준명당에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있도록 최초로 궁중 유치원을 만들고, 심지어 덕수궁  처소인 함녕전으로 덕혜옹주를 데려가기도 했습니다. 쓸쓸한 말년을 보내던 고종황제에게 덕혜옹주는  줄기 삶의 낙이 되었고, 덕혜옹주 또한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였는데요.

    1919 고종황제가 승하하면서 그녀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조선 황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던 일제는 만으로 13세가 되던 어린 덕혜옹주를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합니다.

     

    덕혜옹주 곁에는 계속해서 그녀를 감시하며 악행을 거듭하는 친일파 한택수(윤제문) 바로 그 인물인데요. 왕을 압박해 덕혜옹주를 일본으로 보내 일본식 교육을 받도록 하고, 1931 일본의 백작인  다케유키와의 정략결혼까지 성사시킵니다.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덕혜옹주가 일본인과 결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민은 안타까워했습니다.

     

    매일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던 덕혜옹주.

     

    어느 , 한택수는 덕혜옹주에게 조선인 강제 노동자들 앞에서 일본을 찬양하는 연설을 하라고 합니다. 덕혜옹주는 당연히 이를 거절하고, 한택수는 이런 덕혜에게 어머니가 위독하니 보고 싶으면 연설을 하라고 협박을 합니다.

     

    일본어 연설문을 쥐고, 노동자 앞에 선 덕혜옹주는 강제 징용된 조선들의 모습을 보며 약소국의 아픔을 마주하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녀는 결국 연설문을 내려놓고, 고국에 돌아갈  있으니 힘을 내자고 말합니다.

    이에 화가  한택수는 그녀가 의지하던 보모마저 떨어뜨려 놓고, 이후 덕혜옹주는 끝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드디어 1945 일본의 항복.

    그녀는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으나 왕조가 부활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이승만 정부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덕혜옹주는 조현병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남편과는 합의 이혼했으며,  정혜까지 잃고 맙니다.

     

    그로부터 한참  1962,

    그녀는 다시 대한민국의 땅을 밟게 되었으며, 낙선재로 거처를 옮겨 살다가 1989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덕혜옹주 역사왜곡

    ▶ 영친왕 망명 작전

     

    영친왕은 고종의 아들이자 덕혜옹주의 오라버니입니다.

    영화  영친왕과 덕혜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나라의 독립에 힘을 보태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하며 일제로부터 도망 치려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

    하지만 영친왕은 일본에 엄청난 아부와 협조로 계속해서 일제로부터 극빈 대우를 받으며 호의호식하고  살았던 인물입니다실제 영친왕과 덕혜는 일본 정부의 품위유지비를 지원받으며 호화로운 삶을 영유했으며 영친왕은 세계 2 대전  일본군 중장의 자리까지 받은  사실입니다.

     

    영화 속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이 바로 '영친왕 망명 작전'입니다.

    영화에서는 영친왕과 신하들이 치밀한 계획으로 망명 작전을 펼치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요.

    하지만 이것은 역사적인 기록과는 다르며, 영친왕 형의 의친왕이 상해 임시정부로 망명하려다 미수로 그친 사건 '망명 미수 사건'을 근간으로 만든 영화  허구입니다.

    참고로 영친왕은 일본이 패망했을 당시, 앞으로도 계속 본인을 도와달라며 사정까지 했던 인물입니다.

     

    오히려 왕가의 자존심을 지킨  의친왕의 아들 이우 왕자로, 실제로도 일본에 적대심이 강했다고 합니다.

    고수가 영화  이우 왕자 역할을 맡았으며, 이우 왕자는 '왕가의 자존심을 지켜야지만, 미래의 역사에 떳떳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했던 같습니다.

     

    일본이 망하고  다음 우리 왕가가  자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화  대사가 그것을 대변해주었죠.

     

    ▶ 한국어학당

     

     글씨는 덕혜가 죽기  정신이 멀쩡   썼던 글씨로, 어릴 적 일본으로 건너간 덕혜는 실제로 한국어 실력이 현저히 부족하였다고 합니다.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네  때부터 일본어 교육을 받은 덕혜옹주가 한국어학당을 세웠다는 것은 말도  되는 일입니다.

     

    ▶ 덕혜옹주의 연설

     

    영화  덕혜옹주는 재일조선인 노동자를 위해 연설을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궁궐에서만 귀하게 자란 탓에 바깥세상 일을 알리가 없었던 덕혜는 강제징용된 조선인이 있다는  아예 모르고 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같은  친구인 소마 유키카의 회고록을 보면 소마 유키카가 덕혜옹주에게 “만약 내가 너의 입장이라면 독립운동을  텐데    하니"라고 하자 덕혜옹주는 반응이 없었고, 대꾸를  기력도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영화  덕혜는 일본에 저항하고, 일본 옷을 입기도 싫어할 정도로 일본을 싫어하는 반일감정이 강한 캐릭터로 묘사되지만 실제 덕혜는 일본 옷을 입고 일본 학교를 다녔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일본 노래 또한 유창하게 즐겨 불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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