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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타이타닉 실화 당시상황 생존자
    영화 2019. 11. 1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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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타이타닉' 실화

    타이타닉 실화

    1911년 노던 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 있는 해운사 ‘화이트 스타’에서 사상 유례없이 크고, 화려한 유람선 '타이타닉'이 만들어졌습니다. 1912년 4월 10일, 타이타닉호는 제작사를 비롯 신문매체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영국의 사우스햄프턴을 출항하며 첫 항해를 시작합니다. 타이타닉 호에는 선장 에드워드 존 스미스와 함께 승무원, 승객을 합쳐 약 2,200명 이상이 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타이타닉' 실제 내부사진

    배는 결코 침몰할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선전문구와 함께 프랑스의 쉘부르와 아일랜드의 퀸스타운을 거쳐 미국의 뉴욕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4월 14일 밤 23시 40분, 북대서양의 뉴펀들랜드로부터 남서쪽으로 640km 떨어진 바다에서 빙산에 충돌하여 빙산과 부딪힌 2시간 20분 만에 완전히 침몰하게 됩니다.


    타이타닉 침몰 사고는 당시 세계 최대의 해난 사고로, 생존자는 불과 711명에 불과했습니다. 타이타닉호 침몰 희생자 수 집계는 다양하지만, 영국 상무성의 발표에 따르면 1,513명으로 보고됩니다.

    타이타닉호의 침몰 당시 상황

     

    침몰 당시,

    갑자기 배 앞쪽에 거대한 빙산이 나타나고, 배의 엔진을 모두 가동하여 전속력으로 후진하기 시작해 어렵게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빙산과의 정면충돌을 피하게 됩니다. 그러나 20만 톤에 달하는 거대한 빙산이 배의 우현 쪽을 스치게 되면서 아래쪽 측면부에 큰 구멍을 내게 됩니다.

    만약 배가 빙산의 머리 부분과 정면으로 충돌했더라면, 배의 방수 격실 두세 개만 파손되고, 오히려 배가 무사했거나 적어도 그렇게까지 빨리 침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배에는 16척의 구명보트를 포함해 4척의 접는 보트가 있었으며 수많은 승객들을 태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선장은 자정을 지나 배의 운명이 약 10분밖에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10마일쯤 떨어진 곳에 운항하고 있던 캘리포니안호에 구조 신호를 보냅니다. 하지만 이 배는 무선 통신을 꺼놓고 있었기 때문에 타이타닉호에서 보낸 구조 신호를 듣지 못하게 됩니다.

    '타이타닉' 생존자

    배에 승선한 2,200명 중에는 현재의 화폐 가치로 55,000달러 이상의 많은 요금을 내고 1등실에 승선한 거대한 부유층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최저 요금의 3등실에는 700명 정도의 이민자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사건 당시 최저 요금 객실에 있던 승객들에게는 갑판 아래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는 명령이 내려졌으며, 그 결과 사망자 중 상당수가 최저 요금 객실에 있던 승객들이었다고 전해졌습니다. 배에 탔던 여성 중 1등실 여성 승객은 97%가 생존하고, 2등실은 84%, 3등실은 55%만이 생존했다고 합니다.

    타이타닉 선장

     

    당시 타이타닉호를 이끌던 선장은 ‘스미스 선장’이라고 합니다. 스미스 선장은 선원들과 승객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어떠한 승객 한 명은 스미스 선장이 책임지는 배에만 승선했다고 합니다.


    원래 은퇴를 준비하려던 스미스 선장은, 타이타닉의 첫 항해에 선장을 맡아 달라는 회사의 부탁에 거절을 하지 못하고, 마지막 항해로 ‘타이타닉 호’를 책임졌다고 합니다. 배가 완전히 침몰되기 직전까지도 승객의 대피와 구조 요청 등을 지휘하였으며 배의 침몰과 함께 운명을 다하였다고 합니다.

    타이타닉 최후 생존자

    영화에 나왔던 ‘밀비나 딘’ 할머니는 사고 당시 구조당했던 실제 인물로, 당시 생후 9개월이었던 그녀는 침몰과 탈출 상황을 기억할 리 없지만 타이타닉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생존자입니다. 그녀는 2009년 5월 31일 97살의 나이로 양로원에 잠을 자다 사망했습니다.

    밀비나 딘은 1912년 4월 14일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캔자스시티 모에 이주하기 위하여 타이타닉 호에 올랐습니다. 

     

    부친 버트람 딘은 당시 27세로 운영하던 선술집을 팔고, 새 삶을 찾기 위해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 이민길에 오르는 길이였습니다. 밀비나의 가족은 원래 타이타닉 승객이 아니었으며, 다른 배를 예약했으나 파업으로 인해 예약이 갑자기 취소되면서 타이타닉 표를 받게 되었고, 네 사람은 3등실에 함께 타게 되었습니다.

    밀비나는 2002년 인터뷰를 통해 “가족을 살린 것은 아버지였다고 모친에게 들었다”며 “다른 사람들은 타이타닉이 가라앉을 리가 없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신속하게 대피를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어머니 기오르게 타와 오빠 버트람 주니어와 함께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아버지 버트람 딘은 가족을 구명보트에 태운 뒤, 자신은 타이타닉과 함께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밀비나는 8세 때 처음으로 모친에게 타이타닉 사고 소식에 대해 전해 들었으며, 모친은 사고 당시 기억 때문에 날마다 두통을 앓았다고 전했습니다. 모친은 1975년 95세로, 오빠는 1992년 81세로 각각 사망했습니다.

    밀비나는 1997년 ‘타이타닉’ 시사회에도 초대받았으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상상으로만 남겨두고 싶다”며 끝까지 보지 않았고,  1958년 영화 'Thenight to remember'를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보았으나 너무 처참해서 그 이후 '타이타닉'을 비롯한 그런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타이타닉 제작

    타이타닉 호의 침몰을 바탕으로 한 영화 ‘타이타닉은’은 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5년에 걸쳐 수집한 자료들과 2억 8,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1997년 말 전 세계에 개봉되었으며 세계적으로 1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고 합니다.


    ‘타이타닉’은 현재까지도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영화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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