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

정훈희 나이 남편 김태화 자녀 아들 가족 프로필

반응형

정훈희

정훈희는 1951년 5월 11일생으로 올해 나이 72세입니다. 고향은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출생이며 키, 혈액형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학력 사항은 아미초등학교, 부산여자중학교,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이며 가족은 남편 김태화와 아들 김유진, 김진성이 있습니다. 종교는 개신교이며 현재 소속사는 테이크 노트 소속입니다.

과거 집안 가족

정훈희는 음악과 인연이 깊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요. 정훈희는 5남 1녀의 형제로 아버지 정근수는 피아니스트였으며 작은 아버지 정도근은 피아니스트 겸 밴드 마스터 악단장으로 활동하였고, 밴드 히식스의 멤버로 활동한 정훈희 친동생 정희택과 오빠 네명 모두 색소폰이나 기타를 연주한 음악인이라고 합니다. 정훈희는 한 마디로 음악가 집안에서 성장했으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노래를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뿐 아니라 정훈희의 남편 역시 가수 김태화이며 조카 정재영은 가수 제이로 활동하며 히트곡 '어제처럼'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음악과 늘 가까이하던 정훈희는 고등학교 1학년 방학을 맞아 서울의 작은아버지가 악단장으로 있던 남대문 옆 그랜드 나이트클럽에 놀러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작은아버지 반주에 맞춰서 미 8군 가수들이나 부르던 팝송 ‘러브레터’등 몇 곡을 불렀다고 합니다. 마침 클럽 옆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이봉조가 재즈풍의 발라드를 부르는 정훈희의 목소리를 듣고 필이 꽂혀 단숨에 달려와 찾아왔다고 하는데요.

당시 이봉조는 안개라는 곡을 만들어놓고 자신의 색소폰 연주로 취입한 상태였는데 그 노래에 맞는 목소리를 찾고 있던 중이었고, 그렇게 정훈희는 이봉조와의 인연으로 곡 '안개'를 받아 1967년 가요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데뷔 활동

정훈희는 1967년 고등학교 1학년이던 17세 어린 나이에 1집을 발표하며 노래 '안개'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정훈희는 '안개'라는 재즈풍의 노래 한 곡으로 단숨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데뷔와 동시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요. 이 곡은 1967년 김승옥 작가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안개'에 삽입되면서 평범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던 정훈희는 가요계의 깜짝 스타가 되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의 월급이 2만8천 원 할 때였는데 정훈희의 개런티는 한 번에 1만 원이었다고 합니다.

정훈희는 '안개'로 1970년 제 1회 도쿄국제가요제에서 베스트 10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가창력을 동시에 인정받아 가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이듬해 1971년에는 아테네국제가요제에서 '너'라는 곡으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4위에 입상하였습니다.

또한 그해 10월에는 '좋아서 만났지요'로 동경국제가요제 특별상 수상했으며 1975년에는 칠레 가요제에서 곡 '무인도'로 3위 상과 함께 최고의 가수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국제가요제에서 상을 휩쓸어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것은 물론, 자연스럽게 ‘국가대표 가수’라는 별명을 얻으며 대단한 인기를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정훈희는 1975년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면서 방송 출연을 정지당하게 되었고, 활동을 이어나갈 수 없었는데요. 그런데 1979년 제 20회 칠레가요제에서 정훈희, 이봉조 콤비는 이종택이 작사한 '꽃밭에서'를 스페인어로 번안한 '오늘처럼 아름다운 날'을 불러 최우수 가수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이에 한국 당국에서 국위를 선양한 연예인에 대해 선처를 베풀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정훈희의 칠레가요제 실황 필름은 전국에 방송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훈희는 이후 1975년부터 1980년까지 만 5년을 쉬고 난 뒤 1981년 규제가 풀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정훈희는 이 시기에 1976년 한 극장에 공연을 하러 갔다가 한 스토커로부터 얼굴을 돌로 가격 당하는 일을 겪기도 했는데요. 당시 스토커는 정훈희의 얼굴을 망가뜨리면 자신과 결혼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일을 저질렀고, 정훈희는 그때의 일로 코뼈가 조금 내려 앉았고 실제로 아직까지도 흉터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정훈희는 오랜 시간 방송 활동을 중단한 뒤, 이후 재기 무대가 순탄하지는 못했지만 1982년 발표된 곡 '꽃밭에서'로 제 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는데요. 정훈희는 꽃밭에서, 무인도, 꼴길, 안개, 연가, 스진나 등의 대표곡을 가졌으며 이중 '꽃밭에서'는 가수 소향과 소프라노 조수미가 리메이크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가수 조관우의 리메이크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정훈희는 이후 가수 김태화와 결혼을 하였고, 1989년 둘째를 임신하고 만삭인 상태로 김태화와 듀엣곡 앨범 '우리는 하나'를 발표하였는데요. 이후 결혼 생활로 연예계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고, 2008년에 데뷔 40주년 기념앨범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기념앨범은 독집으로 30년만의 작품이었다고 하네요. 정훈희는 이후 정규음반은 내지 않았는데요. 그 이유에 대해 '죽기 살기로 노래해도 사소한 것으로 버림받는다는 좌절감과 섭섭함 때문이었다'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결혼 남편 김태화

정훈희는 지난 1982년 가수 김태화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정훈희 남편 김태화는 1950년생으로 정훈희와 한살 나이 차이가 나며 1970년대 유명했던 록스타입니다. 미 8군에서 주로 활약했던 '라스트찬스'라는 그룹 사운드의 보컬을 담당하였으며 단발령으로 그룹이 해체되었다고 합니다. 김태화는 그룹이 해체 되었을 당시 놀라운 가창력으로 데블스와 함께 당시의 그룹 사운드계를 평정하기도 했습니다.

정훈희는 오랜 시간 방송 활동을 중단하였을 당시 미국에서 그룹 활동을 하다가 귀국한 가수 김태화와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두 사람은 공연장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당시 정훈희는 그룹 '라스트찬스'에 속해 미친 사람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노래를 하고 있던 남편 김태화를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 날 임희숙이 남편 김태화와 함께 커피를 마시자 했고, 정훈희는 '너는 왜 저런 사람하고 노냐, 같이 다니지말라'고 그랬지만 결국 임숙희의 소개로 남편 김태화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정훈희가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있을 때 김태화가 문병을 오면서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정훈희는 인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1979년 김태화와 약혼을 하게 되었고, 집안의 반대 등의 이유로 헤어지기도 했으나 다시 재회하여 이후 1983년 첫 아들 낳고, 아이가 3살 때 혼인신고를 하면서 3년 후 작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두 사람은 혼전 동거로 많은 화제와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요. 사실 1977년 두 사람은 동거를 하며 살다가 나중에야 결혼식을 올렸다고 합니다.

당시 정훈희가 먼저 동거를 제안을 했다고 하며 이미 인기 스타였던 두 사람이었던지라 데이트할 장소도 없었고, 두 사람 모두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마땅히 만날 장소가 없어서 정훈희는 친구로부터 방을 하나 얻었다가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동거 역시 정당해야 하기 때문에 보란 듯이 잘살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훈희는 남편 김태화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연예계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고, 일 년에 서너 번 방송 가요무대에 출연하거나 친분이 두터운 동료 가수들과 서울, 부산 등에서 간간이 무대에 서기도 했는데요. 정훈희는 연예계 생활과 멀어졌지만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에 만족했다고 합니다. 정훈희는 시어머니와 고부간의 갈등 없이 잘 살았다고 하네요.

한편, 정훈희는 남편 김태화와 결혼 후 남편 김태화의 바람기에 적잖은 고생을 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정훈희는 남편 김태화의 바람에 대해 '바람 피우고 싶으면 나가서 피우고 와라'고 말했을 정도의 성격을 지녔고, 남편 김태화의 바람에도 잘 참아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편의 바람 때문이 아닌 정훈희의 갱년기 증상 때문에 두 사람은 한때 이혼위기를 겪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때부터 두 사람은 별거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쇼윈도 부부라는 의혹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정훈희는 갱년기 당시 갖가지 모임에서 대표 자리를 맡게 되었는데 권리를 찾기 위해 대변하다보니 집에 와서도 남편한테 공격적으로 변하였고, 툭툭 내뱉으면서 말해 갈등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두 사람은 '이혼하자'는 말이 오가기도 했지만 다행이 이혼을 하지 않았고, '이혼했다 치고 살자'라고 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이러한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남편 김태화는 결혼 25년이 지나자 전보다 더 자상해졌으며 아내의 소중함을 느껴서인지 선물공세로 사랑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정훈희 김태화 부부는 현재 부산 임랑해수욕장 주변에 위치한 라이브 카페 '정훈희 김태화의 꽃밭에서'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네요.

한편, 정훈희 남편 김태화는 두 번의 암수술을 받고 현재는 회복 중에 있다고 하는데요. 지난 2016년에 위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하였고, 당시에는 위암 초기라 수술이 잘되었으나 이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무거나 먹다가 8개월 만에 재발하여 다시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체중이 52kg까지 줄어들었다고 하는데요. 이후로는 열심히 치료도 받고 관리하여 정밀검진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합니다.

자녀 아들 김진성 김유진

정훈희 김태화 부부는 결혼 후 아들 김진성과 김유진을 낳아 슬하 아들 두명을 두고 있습니다. 아들 김유진과 김진성은 한때 예명 김대한, 김민국으로 정훈희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으며 2001년에는 음원 '우리집 하루'를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첫째 아들 김진성은 군입대를 했을 때 엄마 정훈희의 군 위문 공연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며 둘째 아들 김유진의 경우에는 정훈희와 2008년 데뷔 40주년 기념공연 무대에 함께 오르기도 했습니다. 정훈희는 아들이 가수로 성공하길 바랬던 것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두 아들은 가수로서 큰 빛을 보지 못하였고, 정훈희는 방송을 통해 아들 김유진의 직업을 프로골퍼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