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주
윤형주는 1947년 11월 19일생으로 올해 나이 76세입니다. 고향은 서울특별시 출생이며 키 174cm입니다. 가족은 부모님 아버지 윤영춘, 어머니 김귀순과 동생 윤병주, 윤정주 그리고 아내(부인)와 슬하 1남 2녀를 두었습니다. 학력은 대광중학교, 경기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 수료 명예학사,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의학 (중퇴), 고신대학교 선교학 명예박사입니다. 종교는 개신교이며 소속은 한국해비타트 (이사장)입니다.
과거 집안 가족
윤형주 아버지는 시인 겸 영문학자 윤영춘 교수이며 윤형주의 어머니는 성악인입니다. 윤형주는 시인 겸 영문학자인 아버지와 성악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글을 쓰고 음악을 듣는 것에 익숙했다고 합니다. 또한 윤형주는 시인 윤동주의 6촌 동생으로 시인 윤동주는 아버지 윤영춘 교수의 조카인데요. 윤형주는 생전에 만날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1917년 중국 북간도 룽징서 태어난 윤동주 시인은 일본 유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습니다. 시인이었던 아버지 윤영춘 교수는 조카인 윤동주와 유대가 각별했으며 윤동주가 일본 대학 재학 시절 윤영춘 교수 역시 일본에서 유학하며 조카를 보살폈다고 합니다. 이후 윤동주가 옥사하자 윤동주 아버지와 함께 시신을 수습하러 갔다고 합니다.
윤형주는 6촌 형인 윤동주의 시에 곡을 붙여서 노래를 만들려고 했지만 아버지 윤영춘 교수가 만들지 말라고 했고, 윤형주 본인은 윤동주의 시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요. 이후 시간이 흘러 의거90주년 기념송 ‘윤봉길의사 노래’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윤형주는 서울 경기고등학교에 입학 당시에 이미 반에서 '서울대학교 학생회장'으로 불렸을 정도로 공부에도 굉장한 소질을 보였다고 하는데요. 특히 시와 운율에 조예가 깊었으며 학창 시절부터 다수의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을 하였습니다.
집안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뜻을 이어 윤형주가 의사가 되길 원하였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길 바랐지만 윤형주는 아버지의 뜻과는 반대로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부모님의 설득 끝에 연세대학교 의예과에 지원하게 되었고, 만약 자신이 본 고사에서 낙방하게 된다면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하여 시인의 길을 걷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윤형주는 연세대학교에 합격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시인의 꿈은 접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연세대에 입학한 후 음악에 심취한 나머지 예과 과정만 수료하고 중퇴하였고, 이후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3학년으로 편입하였지만 결국 중퇴하였습니다. 당시 윤형주는 음악에 푹 빠졌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윤형주는 중학교 시절 영어를 배우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00곡이 넘는 팝송을 줄줄 외웠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사주신 기타로 교본을 사서 독학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윤형주는 교회 고등부 성가대 선배로 후배들 앞에서 근사하게 노래를 하던 조영남을 보고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이후 쎄시봉에서 송창식, 이장희를 만나면서 통기타 문화가 형성되었고, 윤형주는 송창식, 조영남, 김세환과 세시봉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세시봉은 1960년~1970년대 유행했던 대한민국 최초의 대중 음악 감상실이며 영화 '쎄시봉'이 이를 모티브로 하였습니다.
윤형주는 조영남, 송창식 등과 활동하다가 송창식, 이익균과 함께 세시봉을 결성하였지만 이익균이 입대를 하는 바람에 1968년 송창식과 함께 남성 듀엣 ‘트윈 폴리오’를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하얀 손수건, 축제의 노래, 슬픈 운명, 웨딩 케익 등을 발표하였고, 대한민국 포크계를 휩쓸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윤형주는 이후 1970년부터 솔로로 전향하여 '비와 나', '라라라', '비의 나그네', '두개의 작은 별', 우리들의 이야기' 등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데뷔 활동
윤형주는 1971년 동아방송 라디오 ‘0시의 다이얼 DJ’ MC를 맡으며 본격적인 데뷔를 하였습니다. 이후 '톱 툰 쇼', '팝스 투나잇'에 MC를 맡았으며 광고회사 '서울 오디오'와 '샘 기획'을 설립하여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윤형주는 1981년부터 MBC-FM에서 '윤형주의 한밤의 데이트'의 MC를 맡았으며 기독교 방송의 환자와 장애자들을 대상으로 한 '찬양의 꽃다발'과 극동방송에서 '윤형주와 함께'의 MC를 맡아 활동했습니다.
윤형주는 CM송도 많이 만들었는데요. 오란씨, 새우깡, 롯데월드 테마송, 롯데껌, 신세계, 농심라면, 베지밀 등 무려 1400여 개나 되는 CM송을 만들었으며 CM송을 만드는 한빛기획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새우깡 노래로 새우깡 매출이 500억에서 850억으로 올라 새우깡을 선물 받았다고 하네요.
윤형주는 법무부 로고송 '지킬수록 기분좋은 기본'을 작곡하기도 했으며 이 곡은 2017년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삽입곡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청호나이스의 로고송을 만들었으며 주로 콜센터 및 임직원들의 통화연결음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윤형주는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방송을 통해서도 얼굴을 비추고 있으며 유리상자와 함께 웨딩케익, 우리들의 이야기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윤형주는 현재 한국해비타트 이사장으로 국내외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한 이웃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한국해비타트는 주거구호를 목적으로 하는 구호단체로 1976년 미국에서 시작한 국제비영리단체이며 76개국이 참여하고 있고 1990년 한국에서도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한국사랑의 집짓기운동연합회 홍보이사,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홍보이사 등 윤형주가 관련되어 있는 봉사단체만 해도 14개나 되며 윤형주는 의사가 되었다면 누군가를 고쳐주었을텐데 그러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봉사활동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결혼 아내(부인) 김보경 자녀
윤형주는 1975년 3월 22일 아내(부인) 김보경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아내 김보경은 1951년생으로 윤형주와는 4살 나이 차이가 나며 이외에 다른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내 김보경은 남편 윤형주가 원래 의대에 다녔던 사람이라 본래의 길로 가야되는거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결혼해보니 음악이 생활이었던 윤형주는 노래가 몸에 밴 사람이었고, 그 성향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내 김보경은 뛰어난 요리실력과 윤형주를 배려하는 모습으로 완벽한 내조를 하고 있으며 두 사람은 결혼 후 딸 윤성명, 윤선영과 아들 윤희언을 낳아 슬하 1남 2녀를 두고 있습니다.
세자녀 모두 이미 모두 결혼하였으며 미국과 독일에서 공부하고 그곳에 정착해 생활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윤형주 가족은 2003년 카네기홀에서 가족 음악회를 열기도 했으며 카네기홀 역사상 처음으로 온 가족이 무대에 올라 화제를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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