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

김창완 나이 아내 강귀빈 자녀 가족 학력

반응형

김창완

김창완은 1954년 2월 22일생으로 올해 나이 69세입니다. 고향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흑석동 출생이며 키 169cm, 몸무게 65kg이라고 합니다. 학력 사항은 서울은로국민학교, 중앙중학교, 중앙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잠사학 학사이며 가족은 아내(부인) 강귀빈과 아들 김신화 그리고 동생 김창훈, 김창익이 있습니다.

과거 가족 집안

김창완의 아버지 김재혁은 과거 미 8군 군속 설계사였으며 김창완은 어린 시절 괜찮은 집안 환경에서 살았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후 아버지 퇴직금 전부를 여화에 투자했다가 실패하면서 집안 환경이 어려워졌고, 김창완은 학교를 다니면서 틈틈이 일을 했다고 합니다.

김창완은 어린 시절 2년 일찍 초등학교에 들어갔다고 하는데요. 동네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이 두 살씩 많았었는데 그 친구들이 학교에 입학하자 어린 김창완은 무작정 그들과 함께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1년간 초등학교를 청강하자 교장의 재량으로 정식 학생으로 인정이 되었다고 하네요. 동생 김창훈은 형 김창완에 대해 "형은 워낙 수재라서 집에서 일찍 학교를 보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김창완의 첫째 동생 김창훈은 용산고 서울대 농대 식품공학과 출신이며 둘째 동생 김창익은 고려대학교 공대 기계공학과 출신이라고 합니다.

김창완은 이후 중학교 2학년 때 하교길에 만나는 사람마다 "왜 사세요?"라고 물었을 정도로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보였고, 이후에는 미술에 평범치 않은 소질을 보였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막연하게 미대나 음대를 가고 싶었는데 실기시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재수를 해서라도 미대나 음대를 가고 싶었지만 당시 담임선생님이 서울대 농대에 원서를 넣어버렸다고 하는데요. 당시 고교들 사이에 서울대 진학 경쟁이 심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창완은 집안 형편상 사립대에 진학하기 어려웠기에 합격한 김에 그냥 다니자는 심장으로 1971년 서울대 농과대학 잠사학과(현 바이오소재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김창완은 대학교 1학년 때 기타를 보고 '저걸 한번 사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궁금한 마음에 뜬금없이 기타를 사기도 했으며 이후 서울대 졸업식을 며칠 앞둔 시점에는 방에서 바리캉으로 자기 머리를 싹 밀어버리고 결국 졸업식 때는 가발을 쓰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렇듯 어린시절부터 천재적인 소질을 보이면서도 특이한 행동을 많이 하며 지낸 김창완은 이후 음악을 만나면서 이러한 행동들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오랜 투병으로 넉넉지 않았던 가정환경에서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지 않았던 김창완은 1972년 어느날 집에 5000원짜리 기타를 들고 와서 형제끼리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요. 이것이 밴드 ‘산울림’ 음악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김창완 3형제는 어릴 적부터 방에 계란판을 붙여 방음실로 만들고 기타로 자신들이 만든 곡들을 연주했으며 처음에는 전화번호부와 노트, 숟가락통 등을 방바닥에 놓고 드럼 흉내를 내면서 음악을 표현하였다고 하는데요. 나중에는 실제 악기를 다루며 본격적으로 자신들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 나갔고, 당시 이들의 악기와 앰프에서 터져나온 소음 때문에 시끄러워 못살겠다는 동네사람들의 항의가 끊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날이면 날마다 이웃 사람들에게 사정을 하며 살다시피했다고 하네요.

이후 둘째 동생 김창훈이 작곡한 '나 어떡해'가 77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이들 형제는 '산울림'이라는 그룹을 결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데뷔 활동

김창완은 1975년 ‘산울림’ 밴드를 결성해 졸업 후 2년 뒤인 1977년 산울림 1집 ‘아니벌써’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김창완이 1977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동안 작곡했던 150여 곡이 아까워서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기분으로 우여곡절 끝에 앨범 한 장을 내게 되었는데 이 음반이 뜻하지 않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 당시 록 음악이 그다지 대중화되지 못한 때였지만 1집 '산울림' 새노래 모음은 록 앨범으로서는 최초의 히트앨범이었고, 한국 대중음악사상 가장 문제적 데뷔 앨범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아니 벌써'와 '문 좀 열어줘', '불꽃놀이', '안타까운 마음' 등의 곡은 하나의 문화충격이었으며 이후 발표한 2집은 프로그레시브와 헤비메탈까지 도입하여 산울림의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대중적으로도 엄청난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해 서울 문화체육관에서 열렸던 첫 공연은 새벽부터 장사진을 치는 소동과 관객들이 던진 꽃으로 무대가 뒤덮이는 난리통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1977년에 태어난 아이에게 '산울림둥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산울림은 엄청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후 산울림은 가지마오, 독백, 청춘, 먼 나라 이야기, 너의 의미, 어머니와 고등어, 개구장이, 산할아버지, 꼬마야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으며 잠시동안의 공백기를 가지기도 했지만 꾸준한 활동을 이어 갔는데요. 그런데 2008년 드럼을 담당하던 막내 김창익이 캐나다 밴쿠버에서 지게차 사고로 51세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결국 산울림은 해체를 선언하였고, 김창완은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김창완밴드를 이끌고 음악 활동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김창완은 가수 뿐 아니라 연기 활동과 라디오 DJ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데요. 김창완은 1987년 5월 5일 어린이날 특집 노래극 ‘바다의 노래’에서 주역과 음악을 맡으며 배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이후 연애의 기초, 은실이, 카이스트,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하얀거탑, 별에서 온 그대, 밀회, 오! 주인님, 원더우먼, 왜 오수재인가 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여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김창완은 1978년부터 7시의 데이트, 김창완의 골든디스크, 음악여행 라라라 등 꾸준히 라디오를 진행해 오고 있으며 이때의 특별한 시청자 사연으로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등의 책 9권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시한부 인생이었던 청쥐자의 사연을 담은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는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결혼 아내(부인) 강귀빈 자녀

김창완은 지난 1978년 11월 지금의 아내(부인) 강귀빈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김창완의 아내(부인) 강귀빈은 1952년생으로 김창완보다 2살 많은 연상연하 커플이라고 합니다. 김창완과 아내 강귀빈 두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이었지만 김창완이 2년 일찍 학교를 들어갔기 때문에 2살이 어리다고 하며 아내 강귀빈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으로 직업은 소아과 전문의로 알려졌습니다.

김창완은 아내 강귀빈이 첫사랑이라고 하는데요,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두 사람은 졸업 후 서로 볼 수 없었지만 이후 대학생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김창완은 서울대학생이었으며 아내 강귀빈은 고려대 의대를 다니고 있을 때였는데 두 사람은 대학교 2학년 때 독서 모임을 통해  만나게 되었고, 김창완은 초록색 파카에 긴 생머리를 한 아내의 뒷모습에 한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이후 아내와 만나기 위해 책을 빌리곤 했는데 의대생이었던 아내가 빌려준 책은 주로 해부학과 같은 의학 서적이었다고 합니다.

김창완과 아내 강귀빈은 5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고, 결혼 후 아들 김신화를 낳아 슬하 아들 한명이 있습니다. 김창완 아들 김신화는 아빠 엄마를 닮아 굉장히 똑똑하다고 하는데요. 현재 외국계 회사중 하나인 구글코리아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김창완은 아내에 대해 존경심에 가까운 사랑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김창완은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하나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아내와 결혼 한 것이라고 하며 '어머니는 나를 낳았고, 아내는 나를 키웠다'고 말할 정도로 아내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크다고 합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두 사람은 서로 대화가 거의 없이 지내지만 그럼에도 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고 하는데요. 한집에 살고 있지만 김창완은 아내가 자는 시간에 귀가할 때가 많고, 아내가 출근할 때면 잠을 자고 있기 때문에 잘 마주치지 못하고,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아내는 단 한 번도 그런 걸 문제 삼은 적이 없다고 하며 주말에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러 혼자 놀러 나가는 것에 대해서도 지금껏 한 번도 불만을 표시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김창완은 이런 아내에 대해 "내게 큰 나무 같은 존재"라고 말하며 "굉장히 독립적이고 자존심이 세고 가치관이 뚜렷해 휩쓸리거나 흔들린 적이 없다. 나의 온갖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거지를 이해하고 지원해주는 사람은 아내밖에 없다. 아내가 만든 견고한 일상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아내는 멋진 부인이고 엄마로도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