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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김영옥은 1937년 12월 5일생으로 올해 나이 84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고령 여배우로 활약 중이며 일본령 조선 경성부이자 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출생으로 학력사항은 계성여자고등학교,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영옥은 1957년 영화 ‘가거라 슲음이여’로 데뷔하였는데요. 그러나 어머니의 심한 반대로 인해 1959년 춘천방송국 아나운서로 입사하여 뉴스와 교양 프로그램을 진행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워낙 박봉이라는 이유로 입사 8개월 만에 퇴사를 하게 되었는데요. 객지생활과 적은 월급으로 생활이 힘들정도 였다고 합니다.

퇴사 후 3개월의 공백기 이후 1960년 CBS 성우 공채시험에 합격해 활동했으며 김영옥은 그때 쉬었던 3개월의 휴식을 마지막으로 이후 한 번도 쉰 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김영옥은 CBS, MBC 성우로 활동하며 ‘로봇 태권V’, ‘이상한 나라의 폴’, ‘마징가Z’, ‘태양 소년 에스테반’,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등 당시 큰 인기를 누렸던 작품의 주연 더빙을 맡아 목소리 연기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후 연기자로 전향하여 드라마 ‘전원일기’, ‘토지’, ‘꽃보다 남자’, ‘올드미스 다이어리’, ‘디어 마이 프렌즈’, ‘불어라 미풍아’ ‘더킹’, 영화 ‘구두닦이’, ‘써니’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활약하였습니다.

특히 1991년에는 KBS 드라마 ‘옛날의 금잔디’에서 국내 최초로 치매 연기에 도전하여 화제가 되었으며 1996년에는 노희경 극본의 MBC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 또 한번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김영옥은 서른살의 나이에 처음 연기를 시작했으며 연기 생활 동안 가난한 할머니, 인자한 할머니, 욕쟁이 할머니, 부잣집 할머니 등 다양한 할머니 역할을 소화해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할머니 연기의 1인자로 자리를 잡았는데요.

김영옥은 한 방송을 통해 9살 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노주현의 어머니 역할을 하기도 했고, 심지어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신구와 김구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고 말해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남편 김영길 자녀 아들 딸

김영옥은 전 KBS 아나운서였던 김영길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올해 3월에는 MBN ‘모던 패밀리’에서 방송 최초로 남편 김영길 씨를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두 사람은 중앙대학교 방송실에서 처음 만났으며 남편은 당시 정치외교학과였고, 김영옥은 국어국문과였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친구로 지내다가 김영옥이 아나운서로 입사하면서 더욱 친해지게 되었고,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성우로 데뷔하면서 24살 나이에 바로 결혼했다고 합니다.

김영옥은 한 방송을 통해 남편과 이혼 할 뻔한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는데요. 두 사람 사이에 둘째까지 생겼을 당시 김영옥이 밤을 새서 촬영하고 들어왔는데 남편 김영길이 밥상을 걷어차며 “나는 이러고는 못 살겠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김영옥은 남편에게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만 배우를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좋아서 연기를 하는거다”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이산가족 오빠 손자 교통사고

김영옥은 6.25전쟁 때 겪은 아픈 가족사에 대해 전하기도 했는데요. 김영옥에게는 18살, 21살 된 두 명의 오빠가 있는데 작은 오빠는 국군으로, 큰 오빠는 인민군이 되어 당시 인민군으로 끌려간다는 소문에 어머니가 오빠들을 다락방에 숨겨 놨었다고 합니다. 당시 연세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큰 오빠가 결국 북한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두 사람은 서로 총대를 겨누고 싸웠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오빠와 생이별을 하고 1.4 후퇴 이후 국군이 서울에 입성할 때 오빠에 대해 걱정을 했지만 당시 어린 김영옥의 마음에는 큰 오빠가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오빠는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던 해인 2000년 김영옥은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50년이 지나서야 큰 오빠와 재회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2015년도에는 손자가 무면허 음주차량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손자는 죽음의 고비에서 겨우 살아나게 되었지만 평생 장애를 입고 살아야 할 만큼 큰 부상을 당했고, 이 사고 이후로 딸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서 손자를 직접 돌보고 있다며 아픈 상처에 대해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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