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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조 나이 아내 부인 홍숙재 자녀 고향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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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조

조항조의 본명은 홍원표이며 1959년 10월 16일생으로 올해 나이 64세 입니다. 고향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출생이며 혈액형 O형이라고 합니다. 학력 사항은 광운대학교 기계공학과이며 가족은 아내(부인) 홍숙재와 아들이 있습니다. 종교는 불교이며 현재 소속사는 JJ 엔터테인먼트 소속입니다.

데뷔 활동

조항조는 광운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후 미 8군 무대 등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활동을 하다가 1978년 1집 앨범 '서기 1999년'으로 데뷔하여 리드보컬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0년 동안 긴 무명시절을 겪어야만 했고, 1983년부터 1986년까지 그룹 '코리아 환타지'의 리드보컬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다 무명으로 힘든 생활이 지속되자 이후 활동을 접고 1987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1995년 영주권을 포기하고 다시 한국에서 귀국하여 국내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조항조는 1997년 솔로로 전향하여 대중가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남자라는 이유로'라는 곡을 발표하였고, 드디어 고생 끝에 많은 인기를 얻으며 거의 30년 가까이 되는 무명생활을 청산하고 본격적인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조항조는 발라드와 트로트를 섞어놓은 듯 한 음악들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남자라는 이유로’는 당시 IMF라는 특수한 사회적 분위기가 더해져 IMF로 구조조정을 겪는 직장인들과 명퇴, 실직자들 사이에 '남자를 위로하는 곡'으로 통하면서 더욱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실 ‘남자라는 이유로’ 곡은 원래 가수 나훈아의 노래 '무시로'의 원곡이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나훈아가 가사를 바꾸고 곡을 새로 붙여 ‘무시로’를 부르게 되면서 다시 가사를 바꾼 뒤, 가수 설운도, 최진희, 박우철을 거쳐 조항조에게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항조는 ‘남자라는 이유로’라는 곡을 받고 트로트 느낌을 빼달라고 주문했고, 가사는 그대로였지만 리듬이나 가창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 조항조 만의 새로운 곡을 탄생시켰다고 합니다.

조항조는 이후 '그놈의 사랑', '사랑꽃', '브라보', '최고의 결혼', '오빠가 뛴다' 등의 드라마 OST에 참여하면서 호평을 얻어 인지도를 높였으며 특히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OST '사랑찾아 인생찾아'는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어 MBC 드라마 ‘불어라 미풍아’, SBS 드라마 ‘착한 마녀전’ OST에 참여하였으며 2020년 KBS1 드라마 ‘기막힌 유산’의 엔딩 타이틀곡 ‘걱정 마라 지나간다’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조항조는 방송 출연보다 공연을 자주 하는 가수인데요. 조항조가 콘서트에 주력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무대에 대한 욕심이라고 하며 두 번째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조항조는 아직까지 스스로 연예인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고 하며 또한 성격이 무척 내성적이고 말주변도 별로 없어서 예능프로그램 출연이 별로 자신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건 남의 일 이라고 생각될 정도라고 하네요.

결혼 아내(부인) 홍숙재 자녀

조항조는 무명시절 가난한 상황에서 아내(부인) 홍숙재를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아내(부인) 홍숙재의 직업은 대학생이었고 미국 교포였는데 미국에 살고 있던 조항조의 이모의 부탁으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고, 조항조 집에 무언가를 전달해주면서 조항조와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항조는 집으로 심부름을 왔던 아내 홍숙재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하는데요. 첫인상이 너무 좋았고, 외모도 좋고. 생각하는 자체가 남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밝고 긍정적이여서 '이 여자랑 만나면 부족한 점을 서로 채워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후 아내 홍숙재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두 사람은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연인 사이로 발전하였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처가집의 반대가 무척이나 심했고, 당시 아내 홍숙재는 조항조를 보기 위해 한국에 두 번 정도 오게 되었는데 당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가난한 가수인 조항조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고 합니다. 당시 조항조는 고마울 따름이었다고 하네요.

결국 조항조는 처갓집의 반대를 극복하고 아내 홍숙재과 힘겹게 결혼에 골인하였고, 결혼 후 슬하에 아들 한명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항조는 결혼 후 당시 월수입이 15만 원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아내는 수입에 대해 한번도 불만을 표현하지 않았고, 그 돈으로 생활하면서 부족해도 돈을 더 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무명생활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었다고 하는데요.

약 10년간 무명 가수 생활을 하던 조항조는 어느 순간 너무 자신만 생각하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족들에게 미안해지며 음악을 포기하는 마음으로 미국 이민을 결심하게 되었고, 1987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아내는 미국에서 조항조를 보고 무대에 서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조항조에게 무대로 돌아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꿈을 막으면 '남편의 꿈을 부셔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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