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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국제시장 줄거리 결말 흥남철수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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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

감독 : 윤제균
출연 :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2014년 개봉했던 영화 '국제시장'은 1950년대 한국전쟁 시절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평범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며 탄탄한 스토리와 흠잡을 데 없는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국제시장 줄거리

가족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그때 그 시절,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 국제시장은 대한민국 근현대사 영화로 한국전쟁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중공군이 들이닥친다는 얘기를 들은 덕수(황정민)와 그의 가족들은 피난길로 오르게 됩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오는 과정에서 덕수는 그만 막순이의 손을 놓치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배에서 내려 막순이를 찾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와 막순이를 남기고 배는 떠나고 말죠…
그렇게 가족들은 막순이를 찾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뒤로하고 고모가 살고 있는 부산으로 가게 됩니다.



덕수의 가족들은 부산에 정착하게 되고, 덕수는 고모가 운영하는 부산 국제시장의 수입 잡화점 ‘꽃분이네’에서 일을 도와주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갑니다.

 

이후 덕수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과 서울대학에 합격한 남동생 승규의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이역만리 독일에 광부로 떠납니다.

독일로 떠나 오직 가족만을 생각하며 돈을 벌기 시작한 덕수는 그곳에서 첫사랑이자 평생의 동반자인 병원의 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영자(김윤진)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덕수와 덕수를 찾아 한국으로 오게 된 영자는 결혼을 하게 됩니다.

 

꽃분이네 가게를 처분하려는 고모부.

 

덕수는 가게가 사라지면 어딘가에 계실 아버지가 가족들을 찾아오지 못할까 봐 꽃분이네 가게를 절대 처분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가게를 인수하려 합니다.

 


가게를 인수하기 위해서 다시 큰돈을 마련해야 했던 덕수는 돈을 벌기 위해 전쟁이 한창이던 베트남으로 떠납니다.
계속되는 전쟁의 위험 상황 속에서 기술 근로자로 근무하던 덕수는 다리에 총상을 입게 되고,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게 됩니다.


이후 덕수는 한국으로 돌아와 가게를 인수하고, 여동생 끝순이의 결혼식도 치르게 됩니다.

 

어느 날, '이산가족 찾기'라는 프로를 보게 된 덕수와 가족들.


가족들은 전쟁통에서 헤어진 동생 막순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에 나가게 됩니다.
거기서 미국에 입양이 되어 결혼도 하며 살고 있었던 막순이와 재회를 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끝내 찾지 못합니다.

 

혼자 빈방에 앉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덕수..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 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 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 예.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기 참 다행이라꼬."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납니다.

 

흥남 철수 작전

국제시장’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역사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는 남과 북의 민주주의 이념과 사회주의 이념의 갈등 속에서 북침의 기습으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우리는 꼼짝할 수 없이 북한에게 점령 당하였고, 상황은 아주 심각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한반도 전쟁에 대해 개입하길 결정하며, 인천 상륙작전을 통해 상황을 역전시켜 북측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1950년 12월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하면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12월 15일에서 12월 24일까지 열흘간 미군과 한국군을 흥남으로 이동해 철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흥남 철수 작전’입니다.

본래의 작전은 미군과 국군, 그리고 소수의 난민을 함께 선박편으로 철수시키는 것이었으며, 12월 8일 ‘흥남 철수 작전’이 지시가 내려지고, 미군들은 군사물자 등을 싣고 떠날 준비를 하였습니다.

분주한 흥남 부두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예상외로 너무 많은 피난민들이 몰리게 된 것이죠. 당시 자신들도 데려가달라고 모였던 피난민의 수는 10만여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미 제10군 단장 ‘알몬드 장군’은 6백만 톤이나 되는 무기와 장비들을 수송하기 위해서는 피난민을 태우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때 김백일 장군과 미군 소속 현봉학 박사가 알몬드 장군을 간곡히 설득하며 그들의 설득에 마지막에 남는 공간에 피난민 수송을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피난민 승선이 허락되자 영하 27도의 차디찬 흥남 부두는 서로의 가족을 챙기며 배에 승선하기 위한 피난민들로 아비규환이 되었습니다. 바다에 빠지는 사람도 발생하죠..

이에 알몬드 장군은 23만 톤 여의 군수품을 버리라 지시하고, 승선인원 60여 명의 배에 14,000명의 피난민들이 탈 수 있게 만듭니다. 위험하고, 긴급한 상황 속에서도 군수물자보다 인간의 생명을 더 소중히 생각하며 피난민들을 살리기로 결정한 장군의 결단력은 정말 위대해 보입니다.

그렇게 피난민을 태운 배는 부산을 거쳐 거제도로 오게 됩니다. 크리스마스 날 거제도에 도착한 배는 많은 이들을 구하였고, ‘흥남 철수 작전’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도 불리었습니다.
당시 배 안에서는 새 생명이 5명이나 태어났다고 하는데요. 미군들은 이 아이들을 김치 1,2,3,4,5 ‘김치 파이브’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렇게 14,000명의 피난민을 태워 단 한 명의 사망자 없이 오히려 인원이 5명이나 늘어나게 된 ‘메러디스 빅토리아호’는 단일 선박의 가장 큰 규모의 구조작전을 성공한 선박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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